인문학 습관 만들기

day-9 어린이가 아니니까

by 나무늘보

어린이날이 즐거웠던 시절이 언제였던가. 어린이날은 이제 어린이들만 즐거운 날로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그래도 공휴일이라는 사실이 나를 들뜨게 만들었다. 어린이날이 아니라 공휴일이라 들뜨는 날이랄까.

늦잠을 잘 수 있어 좋았다. 아침에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눈을 떴다.

비가 오는 축축한 날에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된단 사실에 또 한 번 즐거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어두운 날을 핑계 삼아 늦게 까지 자고 일어나 점심을 먹으며 한가로운 나날을 보냈다.

원래도 집에만 있는 걸 좋아하는 나는 비가 오는 날엔 타당하게 집에 있을 이유가 생겨 더 자연스럽게 집에 붙어있곤 한다.

그러다 방 상태를 둘러보니 이렇게 집에 쉬면서 안 치우게 두면 또 언제 청소하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도 올 겸 먼지도 덜 날리고 환기도 시키기 위해 창문을 열고 청소를 시작했다.

빨래가 습해서 덜 마르는 게 흠이긴 했지만 빗소리를 들으며 나름 감성적으로 청소를 했다.

평일엔 바쁘다는 핑계로, 주말엔 약속 등 갖가지 이유로 미뤄왔던 대 청소를 드디어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이제 어린이가 아니니까. 내가 해야 할 일은 해야 하는 어른이니까.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었는데 어린이처럼 미루고만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일하는 날도 아니었는데 고작 대청소 조금 했다고 피곤해졌다.

그래도 깨끗해진 방을 보니 마음도 편안해지고 안정적인 느낌이 들었다.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언젠가는 읽어봐야지 하고 위시리스트에 넣어둔 책이 떠올랐다.


'당신이 사는 방이, 당신 자신이다'

-마쓰다 히쓰히로의 '청소력'중-


아직까지 못 읽고 있는 중이다. 사실 읽게 되면 너무나 많이 찔리게 될까 봐 미뤄두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어렴풋이 청소를 끝내고 보니 정말 그 말이 맞는 것만 같았다.

내가 이 방만큼이나 복잡하고 어지럽게 살고 있구나, 하나도 버리지 못하고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쌓여 내 생활이 되어가고 있구나 싶었다.

오늘 대청소를 시도했지만, 완벽하게 다 하지는 못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들만 했을 뿐.

아직 나의 손을 거쳐 정리돼야 할 부분들이 많이 있었다.

쉬는 날이니까. 무리하지는 않았다. 그저 쉬는 날 때마다라도 한 부분씩이라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쉬는 날을 망치면서까지 고되게 하지는 않을지언정, 나는 이제 어른이니까. 나의 삶의 주체가 되었으니까. 내 생활을 복잡하고 어지러운 채 계속 둘 수는 없었다.

나이는 어른이 되도록 먹었지만, 아직 아이의 삶을 살고 있는 나.

오늘은 대청소로 조금이나마 뿌듯함을 선물로 받은 듯하다.



#비오는 날#대청소#어린이날은 공휴일#어린이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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