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습관 만들기
day-21 마음과 마음의 거리
벌써 6개월이나 되었다. 친구가 돌연 이 나라에서 사는 게 자기와 맞지 않는다며 이민을 떠난 지가.
처음 이민을 준비한다고 고민을 토로하는 게 아닌, 준비해서 갈 거라는 통보.
당시는 어리둥절하고 당황하고 또 섭섭도 했었다.
고등학교서부터 쭉 함께였고, 친구를 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다 안다는 건 내 착각이었는지도.
그녀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호기심도 많고, 마인드도 자유롭고 쿨한 사람이었다.
나와는 성향이 정반대인데 그때는 어떻게 친해졌었던 걸까.
'학창 시절'이라는 것이 다 통하는 마법의 시기가 있긴 있었나 보다.
친구는 정말 자유롭고 변화를 좋아하는 긍정적인 말괄량이인 반면, 나는 정말 생각이 보수적이고, 변화를 싫어하는 선비 성향이었다.
그런 둘이 친구가 되다니. 어쩌면 그래서 친구인 건가 싶기도 했다.
졸업 후 대학을 각자 다른 지역으로 가고 전공도 달랐지만, 고향에서 항상 만났고 졸업 후부터 동창모임을 가져왔기에 우리의 인연은 끊어질 수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각자 자기 밥벌이를 시작했다.
그녀는 한국의 조직문화와 사회생활이 자신과 전혀 맞지 않는다 했다. 사회생활이 좋은 사람이 어딨겠냐마는 해야 하는 거니 맞춰가는 나로서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친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친구의 편에서 들어주곤 했었다.
그런 친구가 지금으로부터 6개월 전 이민 발표를 하고 떠났다. 내 주변에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내 곁에, 내가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을 때 보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갈수록 그것들은 내 맘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점차 깨닫게 된다.
수많은 이별과 헤어짐을 겪고, 그것에 연연하지 않는 때가 되면 어른이 됐다는 뜻일까.
얼마나 겪으면 연연해질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있기나 한 걸까.
그렇게 친한 친구가 가기 전 여행도 가고 편지도 주고 이별식을 크게 했건만, 막상 가고 나서는 연락을 자주 하지 못했다.
여러 이유가 있었다. 나 나름대로의 이유.
13시간이라는 시차가 제일 컸고, 새롭게 시작하고 터전을 준비하는 중에 여행도 아닌데 이것저것 귀찮게 물어 번거롭게 하는 게 아닌가 걱정도 되었고, 마음의 여유가 생겼을 때 연락하길, 자리 잡으면 연락 주겠지 하고 기다린 것도 있었다.
당시엔 이유가 있었던 것 같았는데.
생각해 보니 이유가 없었다. 친구란 그런 건데. 이유 없이도 그냥 연락해 봄 직도 해보는 게 친구인데.
멀어진 거리만큼 사이도 멀어만 진 것 같아 괜스레 울적해졌다.
생일이 다가온 친구가 문득 생각나 생각난 김에 연락을 했다. 생일이 다가와 생각났다 했다.
답은 다음날에나 왔다.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조금 적응했다고 했다.
그 많은 일들이 있을 동안 들어주지 못했고 그저 '많은 일'로만 표현되는 그 말속에서 여러 감정이 차올랐다.
혼자서 말도 못 하고 겪었을 수많은 일들이 있었겠거니 짐작만 할 뿐이었다.
그래도 친구는 친구였나 보다. 답장이 매번 다음날에야 도착하지만, 연락의 물꼬를 트자 또 언제 그랬냐는 듯 근래 근황을 묻고 대답하고 있으니 말이다.
캐나다에서 환희 웃으며 찍은 사진을 보고 나서야, 그저 친구는 저기서 더 편안하고 행복한가 보다 했다.
거리가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했던가.
틀린 말이 아니다. 아니, 어쩌면 정확한 말이다.
그러나 그 거리가 멀어졌다한들, 시간의 거리는 멀어지지 않았다. 학창 시절부터 쭉 함께 했던 그 시간들.
아무리 거리가 멀어졌다 한들 그 시간까지 멀리 떨어뜨려 놓지는 못한다.
#오래된 친구#이민#너와 나의 거리#너가 행복해 보여 다행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