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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습관 만들기

day-23 버려야 채워집니다

by 나무늘보

버리지 못하는 것도 병이라 했다. 그렇다면 병인 것 같기도 하다. 제대로 버리지 못하는 걸 보니.

몇 년간 사용하던 드라이기가 점점 바람의 세기가 약해지는 것 같더니, 머리를 말리는데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그러던 찰나, 새로운 드라이기를 선물로 받았고 이제 이전의 드라이기를 보내줄 때가 되었다.

이제 이전의 드라이기는 사실 그 어디에도 쓸 일이 없었다. 두 개일 이유가 없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버리지 못하는 병을 가진 나는 언제 가는 쓸 일이 있지 않을까, 아직 완전히 고장 난 것도 아닌데 라며 또 한 곳에 모셔두었다. 그리고는 눈에 띌 때마다 처리해야 하는데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처리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재활용을 하거나 당근에 내놓으면 될 일이다. 그렇지만 이도 저도 아닌 채 그대로 두는 심리가 무엇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렇게 '언젠가는' 하고선 버리지 못하는 잡동사니가 방에는 여럿 있다. 그래서 그런지 방에는 짐들이 많게만 보인다. 잘 입지도 않지만 그대로 두는 옷들, 살이 쪄서 못 입지만 고이 접어둔 청바지, 쓰지 않는 운동기구, 사용하지 않는 지갑, 가방 등. 이전에는 나에게 큰 활용도를 기여했지만, 이제는 손이 잘 가지 않는 것들.

그것들을 놓아줄 때도 되었는데. 계속 놓아둔다. 놓아두는 걸까, 모아두는 걸까, 버려두는 걸까.

사실 그 물건들 없이 살아도 사는 데에 전혀 지장이 없다. 오히려 가지고 있으면 더 복잡하고, 스트레스 일 때가 많다. 버려야 된다는 생각에 사로 잡히기 때문이다.


버리지 못하는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했다. 스트레스가 될 수 있고, 불안이 될 수도 있다 했다.

생각도, 사진도, 물건도 결국 나는 그 어느 것에서도 자유롭지 못하고 갇혀있는 것이다. 추억이라는 이유로, 언젠가 필요할 것이라는 이유로.

버리지 못하는 건 어쩌면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그 물건, 사진, 추억에 담긴 마음.

그러나 정리를 해야 차곡차곡 다시 쌓을 수 있다. 그대로 덮어둔 채로는 그 어떤 것을 담아도, 채워도 다 복잡할 뿐이다. 새롭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고 있는 친구가 방법을 하나 추천해 준 적이 있다. 덜도 말고, 더도 말고 하루에 하나씩만 버릴 것을 찾아서 버려보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정말 사소한 펜이나 클립이 될 수도 있다 했다. 하나씩 실천하다 보면 필요 없는 것을 고민하게 되고, 그런 고민에 부딪혔을 때, 이 물건 없이도 살아지는가를 생각해 보라 했다. 최근 1년간 그 물건에 손을 댄 적이 없으면 과감히 버려도 좋다고 했다.

미니멀리즘을 책으로 시도했지만, 현재는 그 재미에 푹 빠져 너무나 편안한 삶을 살고 있다며 친구가 내게 강력 추천 해준 적이 있었다. 방법은 알지만, 실천은 안 하고 있었던 그 방법.


이제는 시도해 보기로 한다. 당장 드라이기부터 버리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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