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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습관 만들기

day-39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by 나무늘보

오랜 직장생활에도 적응되지 않는 것이 있다. 누군가를 보내 주어야 하는 송별회가 그렇다.

며칠 전 인사고과 결과가 있었고, 그 결과는 항상 그렇듯 혼란과 충격을 안겨 주곤 했다.

가만히 있는 우리 부서의 부서장을 다른 부서로 발령한다는 인사고과 내용.

물론 부서장님이 일을 정말 잘하고, 성격도 칼 같은 분임은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에 합당한 결과인 것 같다가도 우리 부서의 미래를 생각하면, 암담하기도 했다.

우리 부서는 앞으로 더 힘들어질 것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물론, 인간인지라 부서장님의 당혹감 보다도 나에 대한 걱정이 먼저 되기는 했다.

그 결과를 듣고도 흔들리지 않는 부서장님을 보며 존경과 찬사가 흘러나왔다.

항상 감정적이고, 이성적이지 못한 나와는 달리 부서장님은 늘 이성적이고, 결과를 중요시했다. 그런 점이 나와 맞지 않아 부딪히고 한소리 들을 때도 종종 있었다.

그러나 그런 부서장님을 보며 왜 부서장님인지, 그리고 왜 앞으로 앞길이 창창한 분이신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부서장님과 송별회를 하며 여러 이야기를 했다. 발표가 있기 전 관리자로부터 인사발령 이야기를 들었다고. 그리고는 본인은 그저 '알겠습니다'라고 이야기했을 뿐이라고.

그 상황에 어떻게 의문 하나 없이 그럴 수 있었을까. 괜찮으시냔 물음엔, 그저. '안 괜찮으면 어쩔 거야' 라며 받아들이는 모습.

나는 그게 제일 잘 안되고 어려운데. 물러나야 할 때를 알고 물러나고, 그것을 인정하는 대범함.

그 자리까지 가게 되면 그게 가능해지는 것일까. 그게 가능한 사람만이 그렇게 올라가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드는 밤이었다.

특히나 그렇게 이성적이고, 냉철한 분께서 다른 말에는 덤덤하시다가도. 이 부서를 위해 고군분투하며 일궈낸 노고들, 피와 살을 깎아 여기까지 유지되게 했던 일들을 기억할 때 눈물이 고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부원들이 그렇게 생각해 줄 정도면 자기는 그걸로 괜찮다 했다.

아쉬움과 막막함으로 가득 찬 송별회를 그렇게 끝내고 돌아오며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지도자의 숙명과 리더의 역할에 대해서. 리더에 따라 조직의 스타일과 방향이 결정되기에 그 리더십의 중요함에 대해서.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과 조직들이 존재하지만, 그중에서도 그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사람만이 리더의 자리로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돌아봤을 때, 전혀 리더의 기질도 없고, 그런 욕심조차 없어 낙담되기도 하지만. 그렇게 나와 다른 사람들의 기질과 능력을 배우며 하나씩 배워 나가는 게 아닌가 싶다.



#송별회#노고#리더#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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