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스포라'를 '기억'하기.
*극중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2주기인 2016년 4월 16일. 맑은 포항 하늘에서 비바람 세찬 서울 하늘까지, 밤에서 밤으로 이어진 하루였다. 오전에 안산에서 진행된 기억식과 저녁의 광화문 집회 가운데에는 연극 <아나스포라>가 있었다. <아나스포라>는 디아스포라(diaspora: 흩어짐)의 반대말인 아나스포라(anaspora: 돌아감, 하나됨)를 제목으로 한 것처럼 흩어짐과 다시 이어짐에 대한 이야기이다.
연극은 그 배경부터가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으로 흩어져 있다. 한국전쟁 중의 전선, 2011년 방콕, 2016년의 서울, 그리고 뉴욕. 일견 정신없어 보이는 이 플롯의 디아스포라는,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모두가 이어지며 하나의 지점, 아나스포라를 그려나간다. 말하자면 내용과 형식 모두가 아나스포라를 향하고 있다. 이는 무대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벽돌담 같은 무대에는 각 플롯을 대표하는 문구가 곳곳에 흩어지듯 써져 있고, 셋으로 갈라져 있어 기울면서 나뉘어졌다가 다시 합쳐지기도 한다. 그 가운데에는 크고 깊게 깨진, 검은 구멍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심연, 갈라진 틈새. 그 곳이야말로 분열에 대한 가장 큰 상징이다.
‘하나의 민족’이었던 우리는 정치와 이념으로 갈라졌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 눈 앞의 생명들을 쏘아넘겼다. 왜 그래야 했을까. ‘뽀글이 김씨가 쳐들어와 벌어진 전쟁’과 ‘미 제국주의로부터 벗어나려는 해방전쟁’은 같은 비극을 말하는 다른 증언이다. 이건 둘 다 맞는 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뒤집어서 둘 다 틀린 말이기도 하다. 각자에게는 너무나 깔끔하고 정확할 이 대답들은 서로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는 의견의 평행선이다.
여기서 이념 이전에, ‘흩어짐’을 모티브로 한 창세기의 바벨탑 사건을 먼저 생각해 본다. 사람들은 견고한 벽돌로 빚은 탑을 지어 이웃이 범접할 수 없는 성읍으로 ‘우리’를 둘러싸려 했다. 이에 주님은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지면을 흩으셨다. 주님이 흩어놓은 그 언어’들’은 흔히 ‘외국어’로 여겨진다. 서로가 서로를 알아들을 수 없는 다른 언어들. 하지만 알아들어도 이해할 수 없고, 그래서 받아들일 수 없는 언어가 있다. 한 전쟁을 일컫는 두 진술처럼 말이다. ‘우리’ 남한과 또 다른 ‘우리’ 북조선은 바벨탑의 테두리를 가운데에 끼고 있다. 오만하고 완고하여 타인을 배척하는 ‘우리’들의 3.8선. 사실 언어들을 나누기도 이전, 사람들이 흩어지지 않기 위해 탑을 세운 것이야말로 역설적으로 흩어짐을 품고 있는 것이었다. 그 마음에 비하면 외국어는 차라리 사소할 정도이며, 그저 조금 더 겉으로 드러난 분열의 상징일 뿐이다.
안쪽의 ‘우리’와 바깥의 ‘그들’을 나누는 이분법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남한과 북조선은 (중국어를 쓰는) 조선족 앞에서 새로운 ‘우리’가 되어 ‘그들’을 만들고,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이민한 남한 출신과 북조선 출신 이민자들은 영어를 쓰는 ‘우리’에게 모두 Chink, Yellow Monkey라 불리는 ‘그들’일 뿐이다. 이건 비단 인종/민족의 문제만이 아니다. 민폐, 사회악, 간첩, 거지로밖에 비춰지지 못하는 ‘그들’ 새터민을 비난하는 ‘우리’는 동시에 ‘우리’ 이성애 중심 사회의 ‘그들’ 동성애자이다. 안락하고 화목한 ‘우리’와 집도 가족도 없는 ‘그들’ 고아, 삶을 능히 살아내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스스로 삶을 내버리는 ‘그들’ 자살 시도자들. 이런 식의 우리/그들 이분법이 계속된다면 마지막에 나누어지는 최소 단위는 결국 ‘나와 너’가 될 것이다. 모두는 모두와 다르다. 그 다름에 선을 긋는 권력 의지는 바벨의 벽에 무대 중앙처럼 새까만 역청을 발라 벽을 세운다. 그 벽들 가운데 온전한 '나'는 있을 수 없이, 모두가 돌아갈 곳 없는 디아스포라가 된다. 분명 바벨탑은 벽돌로 지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바벨탑처럼 흩어지고 반목하는 디아스포라의 역사가 있다면 이를 품고 묶고 합치는 아나스포라의 역사도 있다. 곳간에 먹을 것 하나 없지만 집 마루에 누운 거지들에게 옥수수를 나누어 주며 ‘괜찮다, 괜찮을기라’ 말하는 멍청하고 비합리적인 사랑이 있다. 그 사랑은 손녀로 이어져, 자신은 망명 중에 딸을 잃어버렸으면서도, 자살한 언니로 괴로워하는 동생에게 손을 건네며 ‘그 이유를 알 때까지 같이 살자’ 말하게 한다. 그녀는 사랑한, 그리고 사랑하는 모든 남편들과 더 이상 흩어지고 싶지 않으니 역시 ‘같이 살자’ 한다. 할아버지의 친구를 기꺼이 한 집에 품고, 설령 그 할아버지가 그 친구가 아니더라도 상관이 없다고 넉넉히 말한다. 각자의 입장이나 언어나 무엇 하나 같지 않은, 그래서 친해질 수 없는 남편들과 노인은 ‘같이 살자’는 아내의 그 사랑을 경유하여 이어진다.
그리고 그런 아나스포라의 사랑은 또한 현재와 과거의 화해를 부른다. 죄책감에 시달리며 말도 하지 못하는 힘없는 노인, 아메리칸 드림을 꿈꿨으나 이방인이 되어 좌절만 맛본 그에게도 ‘괜찮다, 괜찮을기라’가 울려퍼진다. 그는 ‘같이 살자’로도 해결되지 못한 갈등의 와중에 사경을 헤매고, 삶의 끝자락에서 자신을 부르는 친구를 만난다. 그로부터 전해받았던, 전하지 못한 편지는 미래로 이어져 어둡고 단단한 디아스포라의 구멍을 비춘다. 그리고 그 안에 비로소 꽃잎 가득한 아나스포라가 있다. 찬란히 빛나는 극적 해결의 실마리는 역시 그 멍청하고 비합리적인 ‘괜찮다, 괜찮을기라’에 있다.
우리는 괜찮아질 수 있을까? 같이 살 수 있을까? ‘같이 살아’도 ‘괜찮고, 괜찮을 거라’ 말하는 것은 왜 그리도 멍청하고 비합리적이며, 그래서 어려울까? 서로는 서로가 너무 멀다. 죽음 만큼이나 삶들이 우리를 갈라 놓는다. 안산에서는 세월호 참사 2주기 ‘기억식’이 있었다. 장난처럼 떠난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하게 만든 교통사고, 그리고 그 사고의 먼 과거로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는 ‘사건’ 말이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보이지 않으며, 만져지지도 않고 실체도 없는 권력과 자본이, 어떻게 우리들로부터 눈에 보이고 실체로 만져지는 몸들을 흩어 놓았는지, 어떻게 그들을 우리와 ‘같이 살’ 수도 없게 만들었는지를. 304명의 사망자와 9명의 실종자라는 차가운 숫자 너머에 어떤 삶들이 있었는지를 말이다.
광화문에서는 2주기 집회가 있었다. 100%의 확률로 비가 내리는 광장에는 12000명이 넘는 비옷과 우산들이 모였다. 많은 사람들이 아픔과 분노를 성토했고, 함께 20대 총선의 ‘승리’를 축하했다. 그 축하는 마냥 통쾌하고 기쁘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그 아픔의 아나스포라를 해결하기 위해 숫자를 쌓아 투표를 던지고, 우리/그들의 논리에 따라 의석을 배정해야 했다. 생명의 디아스포라를 해결할 아나스포라가 정치와 이념에 따른 디아스포라의 과정을 통해야만 한다는 것은 통렬한 비극이다. 그렇기에 총선의 ‘승리’만으로 온전히, 깨끗이 축하할 수가 없다. 이미 태초처럼 뚫려버린 디아스포라의 검은 구멍은 메워질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 구멍은 기억의 빛으로 비출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오직 의지적으로, 온 힘을 담은 그 기억하기를 통해 정치와 숫자가 닿을 수 없는 삶에 잠시나마 이른다.
<아나스포라>는 그런 의미에서 치밀하고도 치열한 기억 작업이다.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국가를 넘나드는 삶들을 하나로 이은 집요한 추적은 더없이 드라마틱하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실화에 바탕을 두었다는 사실에서 연극은 삶과 드라마를 잇는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에서도, 이 세상에서도, 아나스포라는 가능할까? 디아스포라만을 거듭하는 처참한 역사 속 어두운 구멍에 한 줄기 따스한 빛이 비출 수 있을까?
적어도 내가 믿는, 2000년 전에 죽은 그는 그렇다고 말했다. 그는 수많은 ‘그들’만 골라 어울렸고, 결국에는 모두에게서 타인이 되어 죽었다. 그는 디아스포라의 구멍에 스스로를 내던진 빛이다. 다시 돌아온 그는 아나스포라가 ‘이미’ 임했다 말하고 떠났다. 마음껏 빵과 포도주를 나누면서도, ‘괜찮다, 괜찮을기라’ 말하며 ‘같이 살았'던 그 삶에 대한 기억을 남겨둔 채로 말이다. 우리는 그 기억을 믿고, 이로 말미암아 디아스포라의 장벽을 그래도 딛고 일어날 수 있음을 믿는다. 그 위에서, 오늘도 한 번 더 외친다.
*각 소제목들은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 3막 중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가사들의 일부, 혹은 개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