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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로예 Nov 27. 2022

나를 키우는 무작정 쓰기의 힘

도서 <신의 문장술> 리뷰

변화는 무작정 시도한 결과로 시작된다고 느낀 적이 많다. 무작정 들어간 동아리에서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 무작정 알게 된 친구와 둘도 없는 우정을 나누었다. 무작정 찾아간 공간에서 나의 취향을 발견했다.  


어쩌면 '쓰는 사람'이 되었던 것도 '무작정'에서 시작된 게 아니었을까 싶다. 아트인사이트에서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을 돌이켜보니 그렇다. 어렸을 때부터 무작정 노트에 글을 쓰기 좋아했고, 무작정 인터넷 사이트에 소설을 올렸고, 책을 읽고 무작정 독후감을 써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사람들은 나를 '쓰는 사람'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나를 키운 것은 거창한 꿈도, 결심도 아니었다. 그저 무작정 글을 썼을 뿐이다. 



'나를 키우는 무작정 쓰기의 힘'이라는 주제로 도서 <신의 문장술>을 만났을 때는 왠지 모르게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삼촌을 알게된 느낌이었다. 책을 읽고 든 감정을 표현하자면 따뜻했다. 이 책에서 전개되는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는 원칙과 기준을 고집하는 일반 작문법 도서와 달랐다. 그보다는 글쓰기의 본질이 무엇인지, 우리가 왜 글쓰기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지, 글쓰기가 왜 삶의 동반자인지 다정하게 이해를 도와주는 느낌이 강했다.  


이번 리뷰에서는 두 가지 상반된 내용을 소개하려 한다. 하나는 '쓰고 버리기'다. 여러분들은 글을 자유롭게 마음껏 쓰시고 미련없이 쓰레기통에 버리시면 된다. 다른 하나는 '축적하는 것'이다. 이때는 쓰레기통에 버리지 마시고 열심히 축적하셔서 글을 모으시기를 바란다. 


 


'쓰고 버리기'로 세상과 나의 거리를 의식하기

 

생각과 상상을 종이에 쓰고는 버렸다. 손을 사용해 종이에 쓰니 머리에 막연하게 고민하던 것들이 점차 정리되어 갔다. 길이 보였다. 반응이 있었다. 그 이후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 유행하는 음악 등 신경 쓰이는 것이나 흥미를 끄는 것이 있으면 뭐든 종이에 쓰고는 버렸다. 

'쓰고 버리기'를 몇 개월간 계속하다 보니 나와 세상의 거리와 관계를 명확하게 의식할 수 있게 되었다. 별것 아닌 고민은 바로 내버리고 '고민할 만한 고민'과 마주할 시간이 생겼다. 

-<신의 문장술> 중에서


글을 쓸 때 아무리 고민하고 생각해도 마땅한 길이 안보일 때가 있다.  


고민이 축적되고, 머릿속에서 돌고 돌다가 무의식에 남아 악몽으로까지 나타난 경험이 있다. 잠에서 깨어나면 '아직도 무의식은 해결방법을 원하는 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신의 문장술>의 작가라면 나에게 '쓰고 버리기'를 제안했을 것이다. 아무 종이라도 좋으니 샤프를 들고 지금 당장 적어보세요. 무엇을 생각하고 있나요? 쓰는 행위 만큼은 그 누구의 평가와 판단도 필요하지 않으니 무엇이든 자유롭게 써보세요, 라고 말할 것 같다.  


실제로 작가는 '쓰고 버리기'를 통해 삶에서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판단을 명확하게 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나를 둘러싼 것들에 대해 나는 어떻게 느끼는가?',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보는가?' 이 두 가지 질문으로 시작된 쓰고 버리기는 몇십 년간 작가의 삶을 이끄는 나침반이 되었다. '쓰고 버리기'에서 중요한 점은 그 누구의 평가도 의식하지 않고 머릿속에 드는 모든 생각과 감정을 써보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파악하는 소통의 문이 열린다.  


이것은 엄연히 '일기'와는 다르다. 일기는 기록물로써 세상에 남는 것이지만, 쓰고 버리기는 종이에 글을 쓰고나서 반드시 버려야한다. 쓰고 버린 정보는 시간이 흐르면서 성숙된다. 의식에 입력되면서 증폭되거나 다른 것으로 변화한다. 쓰는 사람으로서 '쓰고 버리기'를 통해 성숙의 단계로 향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쓰고 버리기'의 구체적인 사례를 생각해보면 다음과 같다.   


1) 밤에 자기 전에 아이디어를 써본다. 쓰고 버린다 

-> 다음날 아침 쓰기 시작해보니 어젯밤에는 떠오르지 않던 아이디어가 전개되거나 어젯밤 몰랐던 커다란 구멍을 알아차리게 된다 (발전과 깨달음) 


2) 발표 연습 뒤에 반성할 점, 과제를 써본다. 쓰고 버린다

-> 다음 발표 때 반성할 점이나 과제가 의식에 입력돼 연습과 실전의 밀도가 올라간다. (밀도의 상승)


이렇게 쓰고 버림으로써 강박적인 사고를 버리고 상황에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장점을 경험한다. 그것도 1cm 더 개선된 나의 모습으로! 이처럼 '쓰고 버리기'는 글을 쓰고 행동하는 자신의 잠재의식에 좋은 씨앗을 심어주는 일이다.  


실제로 나는 '쓰고 버리기'의 실천을 통해 숨겨왔던 속마음과 욱여넣은 생각들을 자유롭고 속시원하게 토로할 수 있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온전히 솔직하게 글을 '휘갈겨썼다'. 어차피 쓰고 버릴 글인데 또박또박 의식하며 글을 쓸 이유도 없었다. 쓰고 버릴 때만큼은 쓰는 사람이자 '사는 사람'으로 생생하게 나의 진면모를 드러낼 수 있었다. 일종의 카타스시스같은 느낌이었다.  


저자는 '쓰고 버리기'를 지속함으로써 인생이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갔다고 말했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문제들 속에서 진정으로 중요하고 소중한 것을 가려내고, 그것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했다.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복잡하고 다양한 세상 속에서 우선 자신의 목소리와 마음에 집중해보는 것이 어떨까. 


'축적되는 것'으로 자기평가를 하자 


이번에는 '쓰고 버리기'와는 다른 관점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쓰고 버리기'를 통해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고 알아가며, 생각을 확장했다면 다음으로 '축적되는 것'으로 자기평가를 할 차례다.  


'자신을 위해서' 하는 일은 스스로 자신을 평가하고 그 평가를 동기 삼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타인의 평가(특히 나쁜 평가)에 흔들리지 않을 힘이 길러진다. 그 힘을 지탱하는 것은 자신감이고, 자신감은 경험이 쌓이면서 생긴다. 

결국 위기에 처한 자신을 구해주는 것은 카리스마 있는 누군가의 말이 아니라 그 지점까지 걸어온 자신의 발자국이다. 힘든 시기를 거친 내가 반드시 미래의 나를 구해줄 것이다. 

-<신의 문장술> 중에서


쓰는 사람으로서 자기 의문에 정면돌파를 해야할 때가 있다.  


'내가 지금 잘 쓰고 있는건가?'라는 의심부터 시작해서 '나는 사람들에게 영향력이 있는 만큼 글쓰기에 능력이 있는 사람인가?'라는 흔들림의 경지까지 이르게 된다. 그럴 때마다 우리에게 힘이 되어주는 말이 있다. 끊임없는 동기 부여를 위해서라면 '변동하는 것'이 아니라 '축적되는 것', '파악되기 쉬운 것'으로 자기평가를 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신의 문장술>은 쓰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기 위해 스스로 무엇을 평가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최선을 다했다면 질보다 양을 평가하라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이 글을 몇 편 썼는지, 몇 글자가 썼는지를 확인해보자"며 성과를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자신감을 가질 것을 제안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매일 일정량의 글쓰기와 달리기를 하며 삶의 루틴을 이어가는 하루키. 문학계의 거장인 하루키의 라이프 스타일은 '축적된 것'이라는 한 단어로 설명이 가능하다. 


돌이켜보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결심 그 자체보다는 지금 당장 글을 쓰기 시작한 '실천'이 나를 쓰는 사람으로 만들어줬다. 시작은 '한달쓰기'였다. 모임에서 돈을 내고, 30일동안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쓰는 실천에 동참한 것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아무 문장, 아무 생각이나 적어내려갔던 그 실천은 2년이 지나도 여전히 지하철을 타며 메모장에 글을 쓰는 사람으로 나를 이끌었다. 아무리 졸립고 피곤한 밤에도 단 몇 문장이라도 더 쓰고자 자리에 앉는 사람이 되게 했다. 핵심은 오늘 쓸 문장을 오롯이 써내는 의지와 실천뿐이었다.  


축적된 쓰기의 경험은 자신감을 만들어주고, 자신감은 자기확신과 자기결정력의 계기가 된다. 쓰고 싶은 사람에서 쓰는 사람이 되는 가장 빠른 방법은 꾸준하게 자신의 호흡을 잃지 않고 계속 쓰는 것뿐이다. 마치 야구에 비유하자면 "그날 컨디션에 따라 오르내리는 타율이 아니라 수가 줄지 않는 홈런 개수를 의식하는 것"과 같다. '오늘도 나는 나의 할당량을 썼나?' 허접하고 허술하다고 생각되는 문장일지언정 야구 배트로 공을 치듯 그렇게 글을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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