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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로예 Dec 09. 2022

징그럽고 경이로운 글쓰기

남에게 읽히는 글, 자기치유를 위한 글 그 사이에서 

나는 때때로 자기 치유를 넘어서는 글쓰기를 하지 못할 때마다 '글쓰기가 징그럽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자기 안에서만 머무는 생각과 신념을 합리화시키기 때문이다. 자기치유라고 생각했던 문장들이 사실은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저 떠오르는 생각과 신념을 자유롭게 쓰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된다고 믿었는데, 이제는 그것이 '좋은' 생각이 아니라면 궁극적인 성장에는 큰 도움이 못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터넷에 본격적으로 글을 올리기 시작하기 전 내 일기장을 살펴보면 놀랄 때가 많다. 정화되지 않은 말들이 거침없이 나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놀랍도록 솔직하다. 누군가 그랬다. 글을 쓸 때 100% 솔직하지 못한 상태로 문장을 남기면, 나중에 읽었을 때 도대체 무슨 말을 한 것인지 모르는 상태가 된다고. 나의 N년전 글쓰기를 살펴보면 그때 어떤 생각과 행동을 했는지 다 기억이 난다. 생각과 감정에 필터를 거치지 않고 거침없이 휘갈겨쓰는 말들은 '글'이라기 보다 차라리 배설에 가까웠다. 그런데도 쓰기를 멈추지 않은 이유는 그 배설에 가까운 '토해냄'에서 자기 치유가 조금이나마 시작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렇게 글쓰기를 지독하게 지속했던 내가 '남들에게 읽히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남들에게 읽히는 글'을 쓰는 것은 '자기 치유를 위한 글'과 목적이 다르다. 나는 이런 이유에서 언젠가부터 글쓰기가 징그러운 동시에 경이롭다고 느꼈다. 


첫째, 글은 말과 달리 소통의 도구로 쓰이기 '전'에 검열되고 충분히 수정가능하다. 


가장 최초로 써낸 글, 그리고 독자에게 닿는 글은 '다른 사람이야?'라는 질문이 들 정도로 결과 표현이 다르다. 그말인 즉슨 남들에게 읽히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부단히 '검열'해야 한다.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도, 비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글을 쓰는 책임감 있는 이름을 달았다면 글에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말은 그 순간 뱉어버리면 주워담을 수는 없지만, 글은 발행하기 전까지 적어도 몇십 배는 더 많은 시간에서 '수정'의 여지가 있다. 글쓰기가 징그러운 동시에 경이로운 이유는 바로 수정 가능성이다. 독자에게 닿기 전 수정할 수 있기 때문에 생각을 더 정제된 표현으로 드러낼 수 있다. 반면 본래의 500% 솔직함으로 무장된 최초의 표현은 깎아지고 또 다듬어져 온전한 속내를 드러낼 수는 없게 된다. 


아까 말했던 배설과는 정반대의 각오가 필요하다. 쉬지 않고 깎아내려야 하고,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10번 20번이고 검토해야 한다. 내 블로그에 올라오는 글의 톤들은 놀랍도록 왔다리다리인데 그것이 '남들에게 읽히는 글'로 목적한 글, 또 '자기치유를 위한 글'이 뒤죽박죽 섞여있기 때문이다. 


둘째, 자기치유를 위한 글은 '행동'이 수반되지 못할 때 망상이 되고 만다. 


방금 이 문장은 조금 과격하다고 느껴진다. 망상이라 표현한 건 검열을 하지 못한 단어인데, 사실 무의식적으로 내가 떠올린 가장 최초의 단어이다. 만약 남들에게 읽히고 반응을 얻고 싶은 글을 썼다면 '망상'이 아니라 '허무한 외침'이라고 바꿨을 것이다. 


아무튼, 자기치유를 위한 글을 쓸 때 행동으로 '실현'되는 것이 뒷받침 되지 못하는 걸 경계해야 한다. 행동하지 않는 막연한 자신감과 긍정회로는 실제 현실에 아무 변화를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종종 행동하는 나 자신에게 칭찬을 하고 보상을 하는 방법으로 글을 쓰고자 한다. 예전같은 경우에는 무조건 '할 수 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다'는 말을 실현가능성 없이 적어냈다면, 지금은 행동 '실현한 후'에 긍정회로의 말로써 글로 피드백을 한다. 


셋째, 글쓰기 자체가 나의 입체적인 모습(얼굴, 표정, 목소리, 톤, 분위기)를 담지 못해서이다. 


글을 쓸 때 좋은 점은 비언어적인 표현을 제외하고 오로지 '텍스트'로만 글을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표정이나 목소리, 분위기로 더해지는 '입체적인 표현의 매력'을 때때로 더 느끼는 편이다. 실제로 나는 글을 쓸 때보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할 때 음낮의 고조나 강약, 표정과 말의 속도의 변화에서 매우 큰 희열을 느낀다. 글을 한 편 만족스럽게 쓰고 나면 '열심히 썼다'는 뿌듯함이 남지만, 발표(스피치)를 만족스럽게 하고 나면 '게릴라 콘서트처럼 재밌었다'는 생각이 든다. 


말과 글의 차이란 그런 것이겠지. 말은 순간에 순간을 이어 리듬을 타고 재즈연주를 하듯 표현할 수 있는다. 글은 순간을 토막내어 온전히 묶어두고 끊임없이 변화시킬 수 있다. 그래서 말의 단위와 글의 단위가 매우 다르다고 생각한다. 표현되는 시점부터 화자가 말하고자하는 의미 자체의 순수성이 다르다. 순수함으로 따지만 말이 더 높은 우위에 있고, 확장성으로 따지만 글이 더 높은 우위에 있지 않을까. 물론 주관적인 생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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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심이 들 정도로 '쓰기'에 매진하고 있는 자에게 들은 조언이 있다. 남에게 읽히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나는 앞으로도 이 징그럽고 경이로운 쓰기로 많은 독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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