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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정 Jul 12. 2023

왜 방송작가가 됐냐고요?

난 학창 시절 친구가 거의 없었다.
그땐 의기소침하고 사회성이 부족했었기 때문인 것 같다.
고등학교 때까지 부모님이 휴대폰을 사주시지 않았기에 쉬는 시간과 주말에 마음을 붙이고 재미를 붙일 수 있는 것은 책들이었고 책을 통해 누군가가 되어보고

상상을 펼치는 것을 좋아했다.
시립도서관에 가면 그런 책들이 한가득 날 기다리고 있었기에 용돈 없이도 책은 날 즐겁고 설레게 해주는 존재였다.


마음이 가장 평온해지는 순간도 자연스레 책 읽는 순간이 되었고 나아가 내가 직접 내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학교 때부터 내 꿈은 소설가, 작가라고 진로를 정해버리고는 틈틈이 자작소설도 썼다.

(지금은 어디론가로 사라진 당시 소설노트들은 가히 이불킥감이다. 사라진 게 다행일지도...)



그러다 고3이 됐을 무렵 처음 미래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작가로 밥벌이를 할 수 있을까, 어떤 전공이 비전이 좋을까를 두고 고민을 이어갔고 결국 대학교는 영어통번역을 전공하게 되었다.

( 국어국문과, 문예창작과 나와서 무슨 일을 할 거냐는 엄마의 질문에 작가 외엔 답을 하지 못했다.)


이 선택이 좋은 결정이라 믿으며 공부하다가 대학 졸업학기에는 교수님의 추천으로 산학협력이 된 작은 무역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그렇게 내 꿈은 서서히 멀어지나 보다 싶었다.

하지만 무역회사는 적성에 영 맞지 않았다.

그 일을 평생 하며 월급만 기다리며 살게 된다면 삶이 너무나 무의미할 것 같다는 생각에 휩싸였다.

이른 아침 회사 출근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스트레스가 되었고 매일 새롭게 쌓이는 수출서류를 정리하고 작성하며 영혼 없이 서류를 찍어내는 컴퓨터가 된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 갈수록 글을 쓰고 싶었고 글에 목말랐다.




그러던 어느 날, TV를 보던 내 눈에 방송 하단에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방송국 공채 흘림자막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눈에 들어온 단어는 "방송작가".

몹시 궁금해지는 방송작가에 대해 알아보면서 영상을 다루며 글도 쓴다면 정말 뿌듯할 것 같다는 생각이 일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같은 과 동기였던 친한 언니가 EBS 여행프로그램의 방송작가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언니는 나에게 많은 팁과 업계 이야기를 간간이 들려주었고 경험담을 들을수록 '나도 해볼 수 있겠다, 나의 길은 이것이다' 라고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결국 난 방송작가가 되기로 굳게 결심했다.

막내작가를 뽑는 외주제작사 면접을 다니면서 마침내 모 프로그램 막내작가로 뽑히게 됐다.

그리곤 다니던 회사를 홀가분하게 과감하게 탈출했다.


이제야 비로소 나의 길을 찾았노라고, 이 직업은 내 평생 직업이라고, 적성에 맞는 나의 진짜 직업을 찾았노라고 생각하며 들떠있었다.

130만 원 언저리를 받던 나의 월급은 막내작가를 시작하며 당시 업계 평균치이던 80만 원으로 시작하게 됐다.

아르바이트비 정도에 불과한, 한 달 용돈이 조금 넘는 것에 불과한 소위 열정페이 월급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드디어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배우면서 돈도 받는다는 알량한 기쁨에 취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막내작가가 된 첫날부터 나의 멘붕과 혼돈은 시작됐다.

졸업 이후 회사 시스템에 길들여져 있던 나는 회의실용 테이블 같은 대형 테이블에서 여러 명의 작가들이 파티션도 없이 적당히 나누어 앉아 일하는 모습에서 1차 충격을,

어두 칙칙한 조명 아래 아이템과 씨름하는 선배작가들의 모습과 화장실이라곤 남녀 공용화장실 단 한 개뿐인 오래된 건물에서 일해야 한다는 현실을 마주하곤 2차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그것은 앞으로 내가 경험할 수많은 현타의 시작이었을 뿐이니...

그렇게 나의 방송작가 생활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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