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찾을 것이 있어 안방 속 엄마의 오래된 큰 가방을 열어보게됐다. 하지만 찾으려던 것은 나오지 않아 가방을 닫으려는 찰나,
몇십 년의 세월이 느껴지는 작은 사진 봉투가 얼핏 눈에 들어왔다. 엄마의 옛날사진인가 싶어 호기심에 사진 봉투를 열어 꺼내 본 순간, 그 호기심은 이내 놀라움과 반가움 그리고 그리움으로 바뀌었다. 그 사진봉투 속엔 예상치 못하게도 외할아버지의 사진이 있었다. 외할머니와 외출하신 어느 여름날의 오붓한 모습이 담긴 사진. 돌아가신 지 어느덧 22년이 되신 외할아버지의 사진.
외할아버지의 사진도, 유품도 갖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늘 기억 속에서만 이따금 꺼내보던 외할아버지의 모습을 사진으로 마주하니 저절로 눈물이 새어 나왔다. 어릴 적 집안 사정으로 몇 년간 뵙질 못했더니 먼 친척처럼 어색해서 왠지 거리감이 느껴졌던 외할아버지, 하지만 손주들 중 나를 가장 아껴주셨던 외할아버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몇 년 만에 다시 뵌 외할아버지가
날 보자마자 얼굴을 끌어안고 한마디 말도 없이 하염없이 서 계시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 말없이 안고 서 계시는지 몰라 할아버지 품 속에서 눈만 끔뻑이며 서 있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니 그때 무슨 심정이셨을지 알게됐다.
늘 긴 말은 안 하셨지만 깊은 사랑을 주신 분이기에 어느 날 하교한 후 들은 외할아버지의 별세 비보는 인생 첫 충격이자 가장 큰 고통이었다. 현관에서 한동안 꼼짝할 수 없었다. 바닥이 아래로 아래로 한없이 꺼지는 듯했고 내가 서 있는 것인지 떠 있는 것인지 감각은 무뎌지고, 시간도 공간도 모두 멈춘 것만 같았다.
빈소에 자리한 외할아버지의 사진을 보며 왜 진작 외할아버지께 놀러 가자는 말 한마디 못해봤을까, 왜 함께 사진을 못 찍었을까 후회와 슬픔이 밀려왔더랬다. 3일장 치르는 동안 툭하면 울다가 외할아버지를 화장하는 내내 몇 시간을 몸속의 수분을 매말릴 듯 눈물을 쏟았던 기억이 난다.
요즘도 가끔씩 외할아버지가 생각난다. 벤슨 분의 "In The Stars"를 처음 들었던 어느 날엔 외할아버지가 떠올라 카페에서 혼자 무슨 사연 있는 여자마냥 눈물을 쏟았었다. (다행히 넓은 카페라 눈치채고 쳐다보는 사람은 없었다)
돌아가신 이후 단 한 번도 외할아버지의 사진은 보지 못했었는데 어째서 22년이나 지나서야 전부터 집에 있던 오래된 가방에서 발견된 것인지....
사진 속 외할아버지의 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본다.
아프시기 전 인자하셨던 모습 그대로다.
이렇게나마 다시 뵈니 마음이 따스해진다. 언젠가 한 번쯤은 꿈에나마 찾아와 주시기를. 어릴 적 그날처럼 한 번쯤 다시 꼭 안아주시기를.
I'm still holding on To everything that's dead and gone I don't wanna say goodbye cause this one means forever Now you're in the stars And six feet's never felt so far Here I am alone between the heavens and the embers Oh it hurts so hard For a million different reasons You took the best of my heart And left the rest in pie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