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비인간의 관계에 대한 탐구
리움미술관에선 프랑스 출신의 현대미술가, 피에르 위그의 전시가 한창이다.
전시 제목인 리미널(Liminal)은 경계라는 뜻의 라틴어인 '리멘(Limen)에서 따온 단어로 생각지도 못한 무언가가 출현할 수 있는 과도기적 상태를 의미한다고 한다.
피에르 위그는 기존 인간 개념, 현실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현실, 인간과 인간 바깥의 세계를 탐구한다.
평소 나는 낭만주의, 인상주의, 표현주의를 가장 좋아하지만 새로운 시도와 기발한 발상이 담긴 현대미술에도 호기심이 많은 편이다. 그렇지만 이 전시는 초반엔 다소 다운되기도 하고 약간은 낯선 느낌이었다.
작품 외의 빛은 차단된 어두컴컴한 전시관 안으로 들어서면 시각과 청각을 곤두세운 채 작품을 감상하게 된다. 어둠 속의 전시관은 많은 사람들로 가득함에도 마치 영화관처럼 고요하다. 그저 영상 속 얼굴이 뻥 뚫린 인물이 움직이는 소리뿐.
생각지도 못한 무언가가 무엇일까에 대한 궁금증으로 인해 미스터리한 기분과 더불어 관람할수록 디스토피아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5번째 작품 '휴먼 마스크'에선 재앙 직후 폐허가 된 마을의 식당에서 홀로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한 소녀 가면을 쓴 원숭이를 마주하게 된다. 특정 동작들을 반복하다가도 초조함과 공허함이 느껴지는 원숭이의 모습은 인간다운 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샘솟게 한다.
작품 관람이 이어지며 의문과 공감이 반복되고 마지막 작품 '카마타'에 이르러서야 작가가 던진 화두를 비로소 확실히 이해하게 된다.
대형 영상작품인 '카마타'는 작품 설명을 일부러 미리 보지 않았다. 안데스 산맥 서부, 칠레 북쪽의 아타카마 사막에서 우연히 발견된 인간 해골로부터 시작되는 영상은 해골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기계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기계들의 행위는 마치 장례의식 또는 고고학적인 발굴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몇만 년 전의 인류는 이러한 모습이었다 하면서.
몇천 년 혹은 몇만 년 이후 인류의 화석을 발굴하는 고고학 기계들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흡사 요즘의 화성 탐사로봇이나 달 탐사로봇 같기도 한 기계들은 구슬을 들어 해골 곁에 놓아두거나 주변을 촬영한다.
이 모습을 계속 보고 있으니 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 중심적 사회 속에 살아가는 우리의 미래는 어찌 될 것인지. 먼 미래의 지구는 어떤 모습일지.
만약에, 혹여 먼 훗날 인간이 멸종한다면 지구는 어떠할 것인가.정말 기계들만 존재하는 문명사회가 될 것인가.
우리는 내 반려동물과 우리에게 필요한 기계, 기술의 발달 외에 비인간 존재들은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과연 인간과 비인간의 상호작용과 공생은 올바르게 이뤄지고 있는 걸까.
작가가 던진 화두에 모두 한 번쯤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