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살의 10월 어느 날부터 시작된 방송작가 생활. 막내작가로서의 삶은 견습작가 혹은 수습작가라고 해야 맞았다. 선배작가들이 아이템 선정을 해서 다음 주 방송을 준비할 수 있도록 아이템을 서치 및 취재하고, 출연자를 섭외한 후 자료조사를 하는 등 선배작가들이 촬영구성안과 대본을 쓸 수 있도록 도와야 했다. 촬영이 끝난 뒤엔 빠른 후반작업이 이뤄질 수 있도록 서포트해야 했다.
이 서포트란 촬영본 영상 속 내용들과 오디오를 받아 적는 일명 '프리뷰'를 하며 선배작가들과 담당 PD가 적절한 영상내용을 빨리 찾아 편집 수정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후 편집 수정이 완료되면 말자막, 상황자막 (현재 화면 속 내용을 요약하여 이해를 돕는 자막), 예고편으로 나갈 예고영상 자막과 흘림자막 ( 타 방송 시청 시 화면 최하단에 지나가는 예고자막)을 작성해야 했다. 선배작가들이 내레이션 대본을 쓰는 시간에는 (주로 늦은 밤 ~ 새벽)다음 주 방송준비를 위한 아이템 서치를 했다.
이렇게 매주 방송 날짜를 맞추기 위해서는 하루의 시간도 허투루 보낼 수 없었고 모든 것을 예정대로
해당 요일에 해야 하는 것들을 문제없이 해내야 했다. 그래야 방송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 수 있었다. 매일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날, 그 요일에 해야 할 것들을 복기하고 체크했다. 그날따라 아이템이 잘 안 찾아진다거나 섭외에 계속
차질이 생기면 밤늦게 퇴근해서라도, 집에 가서라도 마저 업무를 했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해이해지지 않도록 채찍질해야 했다. 또 아프지 않도록 아파도 빨리 나을 수 있도록 건강에 나쁜 것은 배제했다. (아파도 마음대로 쉴 수 없어서 서러움을 겪은 후로는 애초에 아프지 않도록 신경 썼다 ) 혹여 나의 게으름과 실수는, 나의 부재는, 루틴이 틀어진다는 것은곧 스케줄 차질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숨 가쁘게 하루하루가 지나갔고 방송이 송출된 날이면 밤샘으로 피로해진 몸을 위해 반나절 가량 딥슬립을 한 후, 다시 다음 방송을 준비하는 패턴이 이어졌다.
그렇게 일하다가 문득 나는, 우리 작가들은, 쳇바퀴 속 다람쥐 같다고 생각했다. 맡고 있던 프로그램을 아예 그만두지 않는 이상 업무에서 벗어나는 날이나 여름휴가 등은 생각할 수 없었고 친구들과 만날 때도 확실한 휴일이 아닌 이상 약속 잡는 것이 늘 불안했다. (혹여 오늘은 일찍 갈 수 있겠지 하고 약속을 잡는 날엔 어김없이 변수가 생겼다) 취미생활을 하는 것도 왠지 불안했다. 보통 짬 날 때 쉽게 즐기는 취미가 독서였는데 책을 읽을 땐 심신이 평온할 때, 온전히 나의 시간일 때 읽는 편이었는지라 방송작가가 되고선 오히려 책을 읽기가 쉽지 않았다.
작가인데도 불구하고 책을 읽지 않는 작가라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현재는 퇴근 후든 주말이든 원할 때 읽을 수 있으니 행복한 일이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 다독과 필력은 생명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문장력, 필력을 기르기 위해선 많은 글을 읽고 필사하는 것이중요했는데 정작 그걸 하기 위한 시간이 없었다니.... 그렇게 막내작가로서의 시간은 2년간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