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시, 깊게 잠든 정훈의 옆에 현주는 깨어 있었다. 침대에 누운 채 스마트폰을 열었다. 화면의 불빛이 어두운 방을 희미하게 밝혔다. 정훈의 등이 옆에서 규칙적으로 오르내렸다. 현주는 낮에 미정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학원 주차장에서 민재를 기다리며 나눈 짧은 대화였다.
"현주야, 너 혹시 윤서 알아? 민재 같은 반이었던."
"윤서? 아, 알지. 조용한 애. 왜?"
"걔네 아빠가 작년에 주재원으로 베트남 갔거든. 그래서 윤서도 거기 국제학교 다니고 있대."
"국제학교?"
"응. 영어로 수업하는 학교라는데. 거기서 3년 정도 다니면 나중에 한국 돌아와서 특례입학할 수 있대. 학원비 들일 돈으로 해외에서 보내는 게 낫다고 하더라."
"특례는 뭐야?"
"해외에서 학교 다닌 애들은 일반 입시랑 다른 전형으로 대학 가는 거래. 경쟁률이 일반 전형보다 훨씬 낮다나."
한동안 이야기를 이어가던 현주는 '우리랑은 상관없는 이야기'라며 웃어넘겼다. 정훈은 주재원도 아니고, 해외에 갈 계획도 없으니까. 하지만 지금, 민재의 성적표를 떠올리니 미정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특례'. '경쟁률이 낮다'. '학원비 들일 돈으로 해외에서 보내는 게 낫다.'는 것들 때문일테다.
현주는 검색창을 열었다.
「주재원 자녀 특례입학」
검색 결과가 쏟아졌다. 블로그 글, 맘카페 후기, 교육 전문 사이트. 현주는 첫 번째 블로그를 눌렀다.
「주재원 가족의 특례입학 가이드 — 해외 체류 3년이면 달라지는 우리 아이의 미래」
현주는 글을 읽기 시작했다. 특례입학의 조건, 필요한 해외 체류 기간, 국제학교의 학년 체계, 귀국 후 지원 가능한 대학 리스트. 글이 길었다. 현주는 중요한 부분에 스크린샷을 찍었다. 30분이 지났다. 정훈의 코 고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렸다. 현주는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우리 민재가 입시 경쟁에서 계속 버틸 수 있을까? 아이한테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히고 있는 건 아닐까?'
특례. 그 단어가 현주의 머릿속에 처음 새겨진 순간이었다. 아직은 씨앗에 불과했다. 현주는 스마트폰을 충전기에 꽂고 눈을 감았다. 잠은 쉽게 오지 않는 밤이었다.
며칠 뒤, 현주는 다시 미정을 만났다.
이번에는 학원 주차장이 아니라, 동네 카페에서였다. 미정이 먼저 연락했다. "우리 커피 한잔하자. 나 할 이야기가 있어." 아이들이 학교에 간 평일 오전, 두 사람은 아파트 단지 앞 카페에서 마주 앉았다.
미정은 현주의 오랜 친구였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아이들이 같은 학교에 다녔다. 미정의 딸 수빈이는 민서와 같은 반이었고, 두 엄마는 학부모 모임에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미정은 현주와 달리 느긋한 성격이었다. 아이의 성적에 일희일비하지 않았고, "다들 이렇게 산다"는 말을 자주 했다. 현주에게는 그런 미정이 때로는 부럽고, 때로는 답답했다.
"그래, 무슨 이야기야?"
현주가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물었다. 미정은 라떼 위의 거품을 빨대로 저으며 말했다.
"윤서 엄마한테 자세히 들었거든. 해외 생활."
현주의 손이 잠시 멈추었다. 며칠 전 새벽에 검색했던 그 단어가 떠올랐다.
"윤서 엄마가 사진도 보내줬는데, 집이 엄청 넓대. 수영장도 있고. 가정부도 있고. 아이가 국제학교 다니는데 학비를 회사에서 다 내준대."
"그 모든 비용을 다 회사에서 해준다고?"
"응. 주재원이면 자녀 학비 지원이 있나 봐. 1년에 몇 천만 원이래. 한국에서 학원비 쓰는 거랑 비교하면... 솔직히 계산이 되더라."
미정은 핸드폰을 꺼내 카톡 사진을 보여주었다. 넓은 정원, 수영장, 교복을 입은 윤서의 사진. 국제학교 건물 앞에서 찍은 사진에는 다양한 국적의 아이들이 함께 서 있었다.
"그리고 있잖아, 윤서 엄마가 그러는데..."
카페 안의 다른 손님들을 의식하는 듯 미정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특례 있잖아. 해외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포함해서 있으면 되나봐. 일반 수시나 정시랑 완전 다른 트랙이래. 윤서 엄마가 그게 진짜 크다고 하더라. 아이가 서울대는 아니어도, 인서울 상위권 대학은 충분히 갈 수 있다고."
"상위권 대학이면..."
"적어도 서성한 정도 있잖아. 일반 전형으로는 학원비 몇 천만 원 쓰고도 장담 못 하는 학교들을 특례로 가면 경쟁률이 확 줄어든다나. 물론 다 되는 건 아니겠지만."
현주는 라떼 사진을 바라보다가 미정을 보았다.
"근데 미정아, 우리 남편들 주재원도 아닌데 그건 남의 이야기 아니야?"
"그렇긴 하지. 나야 뭐 수빈이가 알아서 하겠지 싶은데... 너는 좀 다르잖아. 민재 성적 때문에 요즘 스트레스 받고 있다며."
현주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거지 뭐."
하지만 카페를 나서며 현주의 머릿속에는 숫자가 돌아가고 있었다. 학원비 월 150만 원, 두 아이면 300만 원. 1년이면 3,600만 원. 초등학교 6학년부터 고3까지 7년이면 2억 5천만 원. 그 돈을 쓰고도 서울대를 장담할 수 없다.
‘주재원 학비 지원. 특례전형. 경쟁률 감소. 해외 3년’
현주는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기 전, 스마트폰의 메모앱을 열었다. '특례입학 조건'이라는 제목으로 새 메모를 만들었다. 며칠 전 새벽에 검색했던 내용을 기억나는 대로 적었다.
— 해외 체류 3년 이상, 고등학교 1년
— 국제학교 재학 증명
— 해외 학교에 따라 학년 상향도 가능
적고 나서 메모를 저장했다. 그리고 시동을 걸었다. 아직은 계획이 아니었다. 메모일 뿐이었다. 하지만 현주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이런 메모를 만들기 시작하면, 그것은 결국 실행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민재의 학원을 알아볼 때도, 설명회에 참석할 때도, 시작은 항상 메모 한 줄이었다.
그날 저녁, 정훈이 퇴근해서 집에 돌아왔다.
"왔어? 저녁 먹었어?"
"아니. 오늘 빨리 끝나서 바로 왔어. 뭐 있어?"
"된장찌개 끓여놨어. 앉아."
식탁에 마주 앉아 밥을 먹었다. 민재와 민서는 이미 먹고 각자 방에 들어간 뒤였다. 조용한 식탁에서 젓가락 소리만 오갔다.
현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여보."
"응."
"혹시 당신 회사에서 해외 주재원 가는 사람 있어?"
정훈은 젓가락을 멈추고 현주를 보았다.
"주재원? 갑자기 왜?"
"그냥 궁금해서. 요즘 주변에 주재원 간 집이 좀 있어서."
"우리 부서에서는 없어. 주재원은 보통 해외 법인이 있는 부서에서 가는 거니까. 나는 해당 안 돼."
"그래? 그렇구나."
현주는 더 묻지 않았다. 정훈은 별 생각 없이 된장찌개를 떠먹으며 넘어갔다.
하지만 현주의 머릿속에서는 새로운 질문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해당이 안 되면... 해당이 되게 만들 수는 없을까?' 그것은 아직 질문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녀의 질문은 답을 찾으려는 힘을 가지고 있다. 현주는 학원 설명회에서 메모하고, 블로그에서 정보를 모으고, 카톡으로 엄마들과 공유하는 그 네트워크에 익숙했다. 그녀는 설거지를 하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주재원..."
물소리에 묻혀 정훈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현주의 머리속은 복잡해져 갔다.
▶『특례, 그거 될까요?』다음화 바로 보기 : 이 길 밖엔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