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표 빵셔틀

by 스크류

삐— 삐— 삐—.

"알겠다. 알겠어. 일어난다고."

현주는 기지개를 켜고, 깜깜한 방에서 무언가를 더듬더듬 찾았다. 이내 차가운 스마트폰을 잡더니 살짝 찡그린 얼굴로 시끄러운 알람을 껐다. 조용한 방에서 네모난 화면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아 참, 오늘 제일학원 설명회 있는 날이구나."

중얼거리듯 내뱉은 말 끝이 바빠졌다. 현주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더니 이불을 걷어차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급히 서재의 불을 켜고, 어제 받았던 설명회 자료를 뒤적였다.

"QR을 찍고... 에이, 뭐 이리 복잡해. 설명회를 알게 된 경로... 원하는 학원 수준... 설문조사가 열 페이지나 되네?"

큰 한숨을 내쉰 현주는 체념한 듯 자료를 툭 던졌다. 책상 위의 먼지가 나부끼며 몇 장의 낱장이 스르르 바닥으로 떨어졌다. 현주는 떨어진 자료를 주우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애들 가면 제대로 보자. 박현주, 정신 차리자! 이제 민재, 민서도 중학생이야."

"당신 뭐해?"

두 주먹을 불끈 움켜쥐는 현주를 향해 정훈이 서재 문을 열며 물었다.

"어, 여보. 나 이제 씻으려고. 나갈 거야."

"근데 서재는 왜? 일찍 일어났네. 나 출근하기도 전에 일어나고."

"응, 오늘은 좀 눈이 빨리 떠졌네. 나이가 들었나."

현주는 정훈에게 얼른 가라며 등을 떠밀었다. 밀려나듯 서재를 나온 정훈은 식탁의 따뜻한 물 한 잔을 벌컥 마시더니, 종종걸음으로 현관을 향했다.

"그래? 근데, 책상위에 서류들은 또 뭐고? 아무튼, 나 이제 나가야해. 다녀올게."

"응, 여보 오늘도 고생해. 파이팅."

현관문이 닫히면서 현주의 마음도 바빠졌다. 현주는 정훈에게 아이들의 육아와 교육에 대해 일절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저 좋은 소식이 있을 때만 정훈에게 이야기할 뿐이었다. 학원비가 올랐다는 것도, 민재가 학원에서 싸웠다는 것도, 설명회에서 2시간을 앉아 있어야 한다는 것도. 정훈은 몰랐다. 아니, 현주가 정훈에게는 모르게 했다.


현주의 차로 학원 라이딩을 시작한지도 어느새 3년이 다 되어갔다.

4년 전, 지하철로 학원 라이딩을 하던 현주는 2학년이던 민서를 잃어버릴 뻔했다. 현주가 지하철에서 깜빡 잠이 들며 다섯 정거장을 지나친 탓이었다. 민서는 20분을 기다리다 엄마를 찾아 나섰다. 6시간이 걸렸다. 깜깜한 밤이었다.

"미안해 민서야. 미안해 정말. 엄마가..."

"엄마가... 안 와서... 무서웠어... 으앙..."

"미안해... 미안해..."

그날 밤, 현주는 처음으로 정훈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나, 차가 있어야 될 것 같아."

"아니, 전업주부가 무슨 차야? 애들이랑 지하철로 왔다 갔다 잘 한다며."

"오늘 나 민서를 잃어버릴 뻔했어. 더 이상 불안해서 안 되겠어."

"아니, 왜?"

"내 잘못이었어. 지하철에서 잠드는 바람에. 그냥 차가 있으면 좋겠어. 나도 차에서 쉬고, 아이들도 차에서 공부하며 이동하고. 그게 아니라면 그냥 집 앞에 학원을 보내든가. 이대로는 불안해서 못 하겠어, 나."

정훈은 말문이 막혔다. 현주가 이런 고민을 털어놓는 것은 처음이었다. 초점을 잃은 그녀의 눈빛을 바라보았다.

"우리 차 자기가 써. 난 회사 셔틀버스도 있으니까."

현주는 아직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4년 전 그 사건 이후, 현주는 아이들이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줄 것을 다짐했다. 그 다짐은 현주 자신의 시간을 갈아 넣는 것으로 실현되었다. 아침에 아이들을 깨우고, 식사를 준비하고, 학교에 보내고, 집안일을 하고, 설명회에 가고, 학원에 데려다주고, 기다리고, 데려오고, 저녁을 준비하고, 숙제를 확인하고. 그렇게 바쁜 하루가 끝나면 자정이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현주는 민재의 방으로 향했다.

"어이, 조민재 씨. 6학년이나 됐으면 알아서 좀 일어나시지."

현주는 웅크린 민재가 돌돌 말고 있는 이불의 끝자락을 잡더니, 강하게 잡아당겼다. 민재의 등을 잡아 흔들고, 벽의 스위치를 눌러 깜깜한 방의 마지막을 알렸다.

"엄마, 나 일어났다니까... 불 좀 꺼줘."

"너 못 믿어. 일어나세요. 엄마는 아침 준비한다."

현주는 창문을 활짝 열더니 방을 나섰다. 이미 거실에 나와 있는 민서와 인사했다. 민재의 방까지 들릴 만큼 크게 소리쳤다.

"굿모닝, 우리 딸."

"굿모닝, 마미."

"아유 이거 봐. 우리 딸은 알아서 일어나서 얼마나 예쁜지 몰라. 조민재! 들리나?"

현주가 소리친 방향에서 어두운 그림자가 서서히 드러났다. 민재였다.

"엄마! 일어났다고요. 나 오늘 아침은 시리얼 먹고 갈래."

"밥 먹어야지. 엄마 밥 다 해놨어. 오늘 아침은 계란 반숙과 장조림~."

"오늘은 컨디션도 안 좋고 밥맛도 별로에요. 내가 챙겨 먹을게요."

민재는 하늘을 향해 뻗친 머리와 반쯤 떠진 눈을 비비며 냉장고를 열었다. 차가운 우유를 작은 그릇에 담았다.

'에이, 이 녀석. 그래도 엄마가 아침 준비했는데 먹고 가지.'

아침부터 야단법석을 떨었는지 민재의 눈치를 살피는 현주. 그녀는 아이들을 향한 말을 아끼는 대신 바쁜 오늘을 서둘러 시작하기로 했다.

"잘 다녀와."

아이들이 현관문을 열고 나섰다. 바쁘고 활기찬 현주의 부엌은 이내 조용해졌다.

서둘러 집안일을 마친 현주는 나갈 채비를 했다. 적막한 집 안에는 째깍째깍 시계 소리가 오늘 하루가 지나가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부웅—.

조용했던 적막을 깨는 시동 소리가 현주의 활기찬 아침을 알렸다. 서둘러 학원 앞에 주차를 마친 그녀는 무거운 강당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가득 찬 자리에서 딱 하나, 현주의 자리가 보였다. 서둘러 자리에 앉았다.

"초등학교 6학년의 시작이, 우리 아이 서울대의 시작입니다! 지금이 아니면 늦습니다."

강사가 열변을 토했다. 파워포인트에는 수능 성적 분포, 학원 커리큘럼, 합격 사례가 쏟아졌다. 현주는 빼곡히 메모했다. 하지만 머릿속 한편에서는 다른 생각이 맴돌았다.

'이걸 7년 더 해야 한다고? 민재가 고3까지 버틸 수 있을까? 아니, 내가 버틸 수 있을까?'

두 시간이 흘렀다. 박수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현주, 고생했다. 설명회가 뭐 이리 어려워? 내가 이렇게 공부했으면 서울대 갔겠네.'

현주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기 전, 스마트폰을 꺼냈다. '특례입학 조건' 메모를 열었다.

설명회에서 들은 숫자가 머릿속에서 다른 숫자와 충돌했다.


학원비 월 150만 원 × 2명 × 7년 = 2억 5천만 원.

해외 국제학교 3년 + 특례전형. 경쟁률 5:1 vs 일반전형 50:1.


현주는 메모 아래에 한 줄을 더 추가했다.


— 제일학원 6학년 커리큘럼: 월 150만 원/1인. 7년이면 2.5억. → 특례가 현실적?


메모를 저장하고 차를 출발시켰다. 편의점에 들러 컵라면과 에너지 음료를 사고, 아이들 빵을 골랐다.

"우리 민재는 가볍게 생크림 롤. 우리 민서는 고급지게 치즈케이크."


차로 향하는 민재의 발걸음이 가볍지 않았다. 저만치 멀리서 걸어오는 민재와 현주 사이에 냉랭한 무언가가 있었다. 차에 탄 현주는 민재를 바라보며 봉투를 건넸다.

"우리 민재가 좋아하는 생크림 롤~"

"안 먹을래요."

"왜? 생크림 롤을 마다하고. 그리고 배고플 시간인데."

아이들을 태우고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민재가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학원 다니기 싫어요. 애들도 안 맞고."

"에이, 무슨 말이야. 민재야 너 이제 중요한 시기야...6학년의 시작이..."

현주는 말을 잇다가 멈추었다. '중요한 시기'라는 말이 방금 설명회 강사가 했던 말과 똑같았다. 현주는 입을 다물었지만, 민재는 입을 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민서는 치즈케이크를 우걱우걱 먹으며 스마트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룸미러에 비친 뒷좌석에는 쌍둥이지만 전혀 다른 두 아이가 있었다. 현주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침묵은 집 앞 현관까지 이어졌다.


▶『특례, 그거 될까요?』다음화 바로 보기 : 고작, 6주란 말입니다.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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