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길 밖엔 없어!

by 스크류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정훈에게 사내 메신저 알림 팝업이 울렸다.


「정훈아 하이~ 혹시 시간 되면 1층 커피숍에서 이야기나 할까?」


'어라? 이 형님이 무슨 일이지?'

한국대 선배 지원이었다. 정훈이 1학년일 때, 한국대의 전설로 불린 2학년 선배. 1, 2학년 모두 올A+로 교수님들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던 그 선배. 졸업 후 세광전자 본사에 입사해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사업장이 달라 자주 만나지는 못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우선 만나보자.'

1층 커피숍의 통창으로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이 지원의 뒤를 비추고 있었다. 정훈은 씩씩한 걸음으로 다가가 웃으며 말을 건넸다.


"잘 지내셨어요?"

"그럼~. 회사에서 커피라도 한잔하며 지낸다는 게 벌써 10년이 훌쩍 흘렀네."

"하하. 형은 본사에 있잖아요. 이렇게라도 부천에서 만나서 반갑네요."

"그러게. 그때 결혼한다고 들었는데, 카톡 보니 벌써 애가 둘이나 있더라?"

"에이, 조금 있으면 출가한다고 하겠는걸요~ 형도 그때 보니 애가 많이 컸던데요. 이름이... 은우였나요?"

"맞아. 기억하고 있었네. 내가 내년에 갑자기 해외로 발령이 났는데, 가기 싫다고 벌써부터 난리다. 중2병인가 싶어."

정훈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해외 발령요?"

"사실 좀 오랫동안 못 볼 것 같아서 인사 좀 하려고 부천 사업장에도 온 건데, 겸사겸사 우리 정훈이도 만나게 되니 좋네."

"그런데 선배는 해외 발령 어디로 가요?"

"인도네시아로 나가는데, 주재원으로 가게 되었어."

"주재원요? 그 뭐 해외에서 짱 박혀서 몇 년 동안 고생한다는..."

"고생이긴 하지. 가족들 보고 나가는 거지 뭐."


정훈은 지원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며 물었다.


"형은 고생인데, 가족들은 뭐 좋은 게 있는거에요?"

"아니, 너 회사 짬밥이 몇 년인데 아직 주재원에 대해 잘 몰라?"

"제 주변엔 주재원이 별로 없기도 하고, 안 좋은 이야기만 들어서 귀를 닫고 있었기도 했고요."

"그렇긴 하겠다. 주변에 없으면 사실 잘 모르지. 나도 그랬으니까."

그렇게 정훈과 지원은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정훈이 쉴 새 없이 질문을 퍼부었다. 주재원의 급여 구조, 해외 복지, 가족 동반 조건, 그리고 아이들의 학교. 지원은 하나하나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자녀 학비는 회사에서 전액 지원이야. 국제학교 보낼 수 있어. 영어로 수업하는 학교. 은우 녀석도 처음엔 싫다고 했는데, 가보면 적응할 거라고 설득 중이야."

정훈의 귀에는 '자녀 학비 전액 지원' 이라는 단어가 걸렸다. 어디서 들은 적이 있는 말이었다. 며칠 전 현주의 핸드폰을 보다가, 우연히 메모장에서 발견했던 해외 학교라는 단어와 주재원에 대한 질문들이 머리 속을 스쳤다.

"지원이 형, 몸 건강히 잘 다녀오세요."

"그래 정훈아. 그리고 아까 말한 어학은 꼭 만들어놓고. 주재원은 평가 좋을 때 도전해야 해. 어학도 좀 준비해놓고. 안 쓴다고 필요 없는 게 아니니까."

"알겠어요."


정훈은 마치 일타강사의 첫 수업을 들은 학생 마냥 신이 나 있었다. 지원과 헤어지자마자 현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기야, 지금 통화 돼?"

"어? 나 지금 민재 학원 끝날 시간이라 학원 앞 편의점에 있는데. 왜? 급한 일이야?"

"아니, 방금 내가 지원이 형을 만났거든. 그 한국대 선배."

"아, 그... 1, 2학년 올A+ 하다가 3, 4학년 때 다 말아먹은 그 오빠?"

"응. 그 형 내년에 주재원 간다고 하더라고."

"주재원? 어디로?"

"인도네시아. 3층 집도 나오고, 차도 뭐 엄청 큰 SUV에, 집은 가정부가 있어서 집안일도 다 해준다네."

정훈이 미처 이야기를 다 끝내기도 전에 현주는 말을 끊으며 질문했다.

"거기 가면 애들 학교는 어떻게 돼? 국제학교 보낼 수 있어?"

정훈은 잠시 놀랐다. 현주가 먼저 학교 이야기를 꺼낼 줄은 몰랐다.

"어... 응. 국제학교 보낼 수 있대. 학비는 회사에서 전액 지원이라고."

"전액? 진짜?"

현주의 목소리에 평소와 다른 날카로운 관심이 실려 있었다. 정훈은 그것을 느꼈지만, 이유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현주가 며칠 전부터 특례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품고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으니까.

"여보, 나 민재 전화 온다. 라면은 물만 붓고, 먹지도 못했는데! 이따 얘기해, 응? 끊는다!"

뚜뚜뚜—.

전화가 끊겼다. 정훈은 못다 한 말을 삼키며 생각했다.

'현주야. 나 주재원 준비해볼게. 이제 목표가 생겼어. 너랑 민재, 그리고 민서까지. 내가 성공해서 우리 가족에게 선물이 될게.'

정훈은 터벅터벅 사무실로 돌아갔다. 마치 고3 시절의 정훈처럼 결연한 표정으로 의지를 다졌다.

'이 길 밖엔 없어!'

그리고 같은 시각, 편의점에서 전화를 끊은 현주는 컵라면 뚜껑을 열며 중얼거렸다.

"국제학교... 학비 전액... 지원이 오빠네도 가는구나."

현주는 스마트폰의 메모앱을 열었다. '특례입학 조건' 메모 아래에 한 줄을 추가했다.


— 세광전자 주재원 자녀: 학비 전액 지원 (확인 필요)


컵라면이 불고 있었지만, 현주의 손은 라면이 아니라 스마트폰 위에 있었다.


▶『특례, 그거 될까요?』다음화 바로 보기 : 엄마표 빵셔틀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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