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6주란 말입니다.

by 스크류

조용한 세광전자 부천 사업장 사무실. 정훈이 김 부장과 회의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도전하고 싶습니다. 정말로요. 제가 부장님께 이렇게까지 이야기한 적 있습니까?"

"아니 조 과장, 대뜸 웬 어학 과정에 간다는 거야? 할 일도 많은데."

"저요. 회사 와서 15년 동안 일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 6주를 못 갑니까?"

정훈이 억울하다는 듯 김 부장을 향해 물었다. 김 부장은 사춘기 아이를 타이르듯 차분히 대화를 이어갔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니잖아. 왜 하필 지금이냐고. 지금 프로젝트만 끝나고 가라니까? 그때 가면 누가 말리냐고. 평가 때문에 그래?"

"아뇨. 지금이 아니면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그래요. 꼭 보내주십시오.안 보내주시면 저 이거 상무님께 이야기하겠습니다."

"야,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알아서 해 임마!"

김 부장은 화가 잔뜩 난 듯 찡그린 얼굴로 회의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사실 김 부장도 정훈에게 할 말은 없었다. 작년 초 상위 고과를 약속한 그는 결국 정훈에게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지난 3년간 이어온 정훈의 상위 평가는 올해로 막을 내렸다. 정훈도 이를 빌미 삼아 김 부장에게 큰소리를 칠 수 있었다. 지원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주재원은 평가 좋을 때 도전해야 해. 어학도 좀 준비해놓고."


점심 식사를 마친 정훈은 커피 한 잔을 들고 다시 김 부장의 자리에 찾아갔다.

"부장님, 아까는 죄송했습니다. 앞으로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발판으로 삼을게요."

"음... 그래. 이미 마음은 정한 거 같으니까 다녀와. 거, 6주 동안 상위 등급 못 따면 다시 돌아올 생각하지 말고!"

김부장은 아직 상기된 얼굴로 모니터만 바라보며 정훈에게 말했다. 정훈은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두어 번 숙이며 자리로 돌아왔다.

「영어 회화 6주 과정 모집, 레벨A 목표 반! 예비 주재원을 환영합니다.」

회사 게시판에 있는 어학 과정 입과 모집 안내문을 다시 한번 읽어 내려갔다. 천천히 읽어 내려가던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예비 주재원.'이라는 단어가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잘 다녀오자. 조정훈. 넌 뭐든 할 수 있는 놈이잖아.'


그날 유독 일찍 집에 돌아온 정훈은 현주를 향해 선전포고를 했다.

"다음 주부터 영어 수업 들으러 가. 수원으로."

"수원? 갑자기 왜?"

"김 부장한테 어학 교육 가고 싶다고 이야기했어."

현주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어학 교육? 갑자기 왜? 부장 진급 때문에?"

"아니, 나 진짜 기회만 되면 주재원으로 해외 나가보고 싶어."

현주의 표정이 변했다. 놀란 것이 아니었다. 정훈이 예상한 것과 달리, 현주의 눈에는 놀람이 아닌 다른 감정이 스쳤다. 안도? 기대? 정훈은 그것을 읽지 못했다.

"자기, 얼마 전 지원 오빠 때문이야? 그 오빠가 자기한테 헛바람 넣고 갔네."

"헛바람 아니야! 준비하는 자에게 기회가 온다고."

"이제 곧 부장을 바라보는 사람이 열심히 일해도 모자랄 판에, 갑자기 교육을 간다고? 김 부장은 뭐래? 순순히 보내줘?"

"아니, 난리 났지 뭐. 결론은 다녀오래."

"허... 참... 평소같았으면 당신은 김 부장한테 찍소리도 못하더니."

그때 현관문이 열리며 민재와 민서가 집으로 들어왔다.

"우리 쌍둥이들, 잘 놀다 왔어?"

"오늘처럼 학원 없이 애들이랑 실컷 놀고 싶어. 엄마, 최고야!"

민서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번 주는 학원 공사 때문에 잠시 쉬는 거니까, 잠시 여유를 즐기세요~"

"아빠는 왜 이리 일찍 오셨어요?"

민재가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정훈을 향해 물었다. 정훈은 겸연쩍은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아빠? 음... 그야 우리 민재와 민서를 보고 싶어서 왔지요."

"얘들아, 아빠 다음 주부터 영어 공부하신단다."

"뭐? 영어 공부? 와우, 마이 대디 리얼리?"

민서가 정훈을 향해 놀란 눈으로 물었다.

"아빠도 이제 열심히 할 거야. 렛츠 스터디 윗 미, 마이 패밀리~ 오케이?"

"예스, 대디! 야호, 신난다!"

민재는 조용히 지켜보다가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학 과정이 열리는 수원 연수원으로 향하는 셔틀버스 안에서 정훈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다.

'아시아는 인도네시아... 베트남... 말레이시아.... 미주는 미국... 멕시코...'

세광전자의 전 세계 60여 개 사업장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이제까지 알지 못했다. 관심을 가지니 전 세계에 많은 사업장이 있었다. 정훈의 부서는 수많은 생산 거점과 협력했다. 협력하는 곳에는 기회가 있었다. 그동안 그가 관심이 없었을 뿐, 주재원 기회는 무궁무진하게 열려 있었다.


'그래도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라도 미국이 제일 낫겠지?'


정훈은 창밖을 바라보다 잠시 두 눈을 감았다.

정장을 입은 정훈이 차 문을 열고 서류 가방을 툭 던진다. 유창한 영어로 기사에게 행선지를 설명한다.


"I have a meeting with our Walmart client. So, please take me to a Korean BBQ restaurant on Korea Street."

"Yes, Sir."


한국에서도 타보지 못했던 독일 수입차였다. 아늑한 뒷좌석에 앉은 정훈은 창밖으로 이국적인 풍경을 바라보았다. 코 끝에는 은은한 라벤더향이 퍼졌다. 정훈이 그토록 바라던 주재원 생활이 펼쳐지고 있었다. 정훈이 그토록 바라던 주재원 생활이 있는 이곳은 미국 텍사스다. 그 때, 아내 현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민재와 민서가 나란히 국제 학교에서 1등을 하고 상장을 들고 있는 사진이었다. 아이들이 모두 잘 적응하니 정훈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특례, 그거 될까요?』다음화 바로 보기 : 시작이 반이다.

수,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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