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요
나는요/조성범
나는요
사는 게 심심해질 때
좋은 것 싫은 것도 없어질 때
하필 그때가 또 놀무렵이면
내 가슴 속엔
어릴 적 숨어 놀던 빈집에
부서진 창문을 훼엥 넘나들던
바람 소리가 나더라구요
내가 바람을 닮았나요?
남는 것보다
떠나는 것이 더 많은 날
기억되는 것보다
잊히는 것이 더 많은 날
그런 날은 혀끝에 쓰디 쓴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꿈이라도 꾸고 싶더라구요
하얀 나비 쫓아
들길을 아지랑이처럼 너울대
숫처녀 고운 낯 살포시 물들이는
그런 꿈 꾸고 싶더라구요
깊고 깊은 꿈속에선
그 누구에게라도
달려 가고 싶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