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덜컹거리는 하루를 견디어 냈다
안개비로 시작한 아침이 아직 흐릿한 오전 10시경
집을 나서 지하철역으로 느릿한 발걸음을 내 딛는다
누구나 그렇듯 나 또한 반복되는 일상이 가끔은 숨통을 조여 오기도 해 얼마를 벼르다 모처럼 연차 휴가를 내 봄날을 찾아 나선 길이다.
그저 딱히 가보고 싶었던 곳은 아니지만
당일치기로 혼자 느긋할 만한 곳을 찾다 보니
용문산과 두물머리 그리고 때맞게 5일장까지 열리는 양평으로 길을 잡았다.
지하철 1호선을 타니 드문드문 빈자리가 있어 한 귀퉁이 자리 잡고 타 전철 창 밖을 바라보니 어느새 청량리 역에 도착했다.
양평 행 기차표를 끊고 약간의 시간이 남아 간단하게 볼 책을 한 권 사고 싶어 역사에 있는 재고 서적 파는 곳을 기웃거려 보니
그런 곳은 늘 그렇듯 선뜻 손이 내밀어 지는 책이 없어 돌아서려다 언뜻 문예지처럼 보이는 책이 있는 것 같아 꺼내 보니 詩 전문 문예지 겨울호였다.
새 책인데 군데군데 얼룩이 져 마음이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볼만한 책 한 권 얻었다는 생각에 값을 치르고 대합실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고청량리 發 안동 行 무궁화 #1605 일반실 5호 차 객실 55번 자리에 앉아 본격적으로 봄날 작은 일탈에 몸을 싣는다.
울컥울컥 내딛는 걸음이 레일 위로 서서히 속도를 내기 시작하고
반복되는 끝없는 일상은 내 한쪽 귀 뒤쪽으로 휙-휙 넘어가고
창 밖 풍경은 내 눈길을 꽉 붙들고 순간 순간 변해간다.
덕소 지나 팔당, 국수를 지나 금세 양평역에 기차는 도착했다.
나는 내려야 했고 한참을 더 가야만 하는 기차는 나를 내려놓기 바쁘게 떠나버렸다.
노래 "기차와 소나무" 가사처럼 아니더라고 광장이 있고 할머니 몇 분 푸성귀 놓고 조는 그런 정감 있는 곳을 기대했던 나는 황량한 양평역 풍경에 조금은 실망했다.
역 구내에서 양평의 하루를 위해 관광 안내 책자를 찾아보았지만 책자는커녕 양평군 지도조차 보이질 않아 무작정 큰길로 나가 관광안내소를 찾기 시작했는데 한참을 찾아도 보이질 않아 양평군청 민원 봉사실로 가 보았는데 그곳에도 관광 안내 책자는 없었다.
흐린 날이지만 따스한 봄기운이 좋아 그냥 이리저리 걸어 보지 하는 마음에 우선은 철길 주변에서 열리는 양평 5일장을 둘러보기로 했다.
철길 주변에서 벌어지는 5일장은 인근의 용문장, 횡성장, 홍천장에 비하면 날이 갈수록 그 규모가 커지는 추세다.
왁자한 인파들 속에서 활기가 넘쳐흐른다.
갖가지 봄나물, 봄옷, 생선, 과일 온갖 먹을거리가 가득한 장터에 각 촌에서 오랜만에 나들이 나온 사람들 서로 반가운 인사들 나누고 족발에, 장터 국수에즉석에서 갈아낸 녹두로 부친 빈대떡으로 정을 나누고 한 잔 막걸리로 너털웃음 짓는 모습이 사람 사는 곳에 왔음이라 한참을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다
빈대떡 난장에 슬쩍 궁둥이 디밀고 앉아 커다란 빈대떡 한 장에 막걸리 한 주전자를 들이키니 어색하게 끼인듯함이 사라지고 어릴 적 어머니 따라 홍제동 장터에서 신났듯 온 장터가 정겨움으로 가득하다.
양평 하면 천년 고찰 용문사를 품에 안은 용문산, 양평군의 마터호른이라 불리는 백운봉, 40여 년된 장대한 느티나무와 물안개가 장관인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등 명소가 많지만 이르지 않은 시간 대중교통을 이용한 여정이기에 그 모두를 다음으로 미루고 그냥 걷기로 했다.
남한강이 감아 도는 양평군 오빈리에 있는 들꽃수목원에 들러 들꽃 향기에 마음을 적시고 남한강변을 거닐며 강물을 바라다보기도 하고 큰길을 벗어나 이미 봄날이 훌쩍 와 있는 들길을 걷다가 막 땅을 뚫고 나오는 연둣빛 새싹들을 보느라 한참 쭈그려 앉아 있어 보기도 하다 노란 개나리 눈부신 길가 동네 작은 상점에서 음료수 한 병 사서 마시며 담장 너머 몽글몽글 봉오리 맺힌 진달래 분홍빛을 바라보며 느릿한 걸음을 내딛다 보니 어느새 하루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양평역으로 되돌아오니 아직 돌아갈 기차 시간이 남아 역 앞 공터 풀밭에 있는 공사용 콘크리트 관 위에 올라앉아 신발을 벗고 양말까지 벗어 오늘 하루 헛헛했던 가슴을 위해 수고를 마다 하지 않은 두 발을 잠시 쉬게 해주며 해 질 녘 양평 시내를 바라 보며 하루의 일탈에 안녕을 고한다
무궁화 #1688 일반실 5호 차 38번 좌석에 자리를 잡으니 옆 창가 자리에는 어디서부터 오는지 지긋한 아주머니가 앉아 있고 통로 어둠은 산그늘을 벌써 내려와 강물까지 덮으려 하고 하늘로 오르지 못한 강변 까페촌 빛, 빛 조각들은 강물 속에 허리춤까지 담그고 흐르는 강물에 쓸려가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허우적 거리고 있다.
팔당, 덕소 지나 청량리역에서 용산행 열차를 갈아타고 용산에서 동인천 직행 전철을 갈아타고 오늘도덜컹거리는 하루를 견디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