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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범 Apr 08. 2024

군산

또 다른 이야기 1

3월의 군산은 겨울이었다.

밤새 제대로 잠들지 못해  영등포역에서 무궁화 첫 기차를 타고 오는 동안 자꾸만 처지는 어깨하고 뒷목이 뻣뻣해 힘들긴 했지만 차창 밖으로 풍경을 바라보는 동안 정신은 갈수록 명징해져 갔다.

혼자 군산역에 내린 것은 이제 막 하루 일과가 시작되는 오전 9시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역 광장엔 바람만 불고 있었고 택시 승강장에 몇 대의 택시만 서있었다.

역전을 벗어나 걷기 시작했다.

드문드문 차들만 지나고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도로가엔 혹독했던 겨울을 이겨내고 솟아 난 새싹들이 아직도 차갑기만 한 바람아래 흔들리고 있다.

군산은 처음이었다.

아니 언젠가 와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다.

아주 어릴 적 아버지 손을 잡고 기차를 타고 한참을 걸어 어디선가 (아마도 장항이었겠지) 배를 타고 와 본 것 같은데 사실인지 꿈을 꾼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넓고 한적한 길을 얼마쯤 걸었을까 길가에 2층 건물이 보여 가까이 가니 채만식 기념관이었다.

안으로 들어가 팸플릿을 들고 천천히 2층까지 둘러보다 밖으로 나와 햇살 아래 쪼그려 앉아 담배 한 대를 피우며 오래전 아버지의 음성을 떠올린다.

“사람은 겉모습이 사람이라고 사람은 아니다.

사람은 올곧은 뜻이 있어야 그 뜻을 위해 살아야 사람이다!

너는 아무리 힘들어도 뜻을 잃어버리고 살지 마라”

그때는 아버지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알지 못했다.

담배 연기 너머 흰나비 한 마리가 날갯짓하고 있다.

나비는 긴 겨울을 어둡고 차가운 땅속에서 끝내 버텨내어 아직 꽃 피지도 않은 날 살랑대는 날갯짓으로 누구에게 봄을 알리려 이리 일찍 날고 있을까?

누군가는 “온전히 펼쳤다가 접는데 한 생애가 다 걸린다는 책이라고 한다... 책이 나를 읽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저 책이 얼마나 크고 두꺼운지 가히 짐작만 할 뿐이다”라고 이야기했듯이

나는 긴 터널 같은 시간을 뚫고 나와 생을 다 바쳐 펼쳐놓은 이야기, 나비가 펼쳐놓은 그 봄의 이야기를 읽을 수가 없다.

그저 겨울은 그냥 지나가지 않고 나비의 날갯짓으로 바람이 불어오고 불어온 바람에 꽃이 피어나 봄이 찾아와야지 비로소 겨울이 지나간다는 것을 알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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