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나는
가을날 나는 /조성범
가을날 나는
약수터 팔각 정자에서
낮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여름의 잔해들이 끝도 없이 쌓이고 있습니다
먼 길 떠나려는 여름을 사납게도 흔들어댑니다
잔인한 바람 목젖을 타고 넘어오는 울음을
살살 달래어 깨지 못할 잠속으로 밀어 넣습니다
여름은 노랗게 질려 땅바닥으로 주저앉고
바람은 낮술 취해 뻘건 얼굴로 건들거리고
나는 낮잠에 빠져 팔다리가 저립니다
연골이 다 닳아빠져
뻐그덕 거리는 검버섯마다
여름날 장맛비가 흘러내린 골 깊은데
볕 좋은 햇살에 치마끈 풀기만 한 것이 아닌데
저 배라먹을 바람은 먼 고약함으로 허리 굽은 여름 쥐 흔들고 있는 걸까요
노랗게 질려 땅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여름이
갖가지 기호로 헛것이 돼 보여
잡으려 내밀던 손 오그려 소리 내지 않고 슬며시 돌아눕습니다
뻘겋게 달아오른 낮술이 금세 깨어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 속에 꽁꽁 얼어버릴 것을 기다려 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