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두 한 알, 윤동주 생가에서
백두산 여행에서 3읾째 되는 날, 우리는 해란강을 건넜다. 물빛은 맑고, 강 저편은 말없이 열려 있었다. 나는 그 조용한 흐름 앞에서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무언가를 넘었다는 기분을 느꼈다. 여권이나 표지판이 증명하지 않아도, 몸은 이미 다른 나라에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내 마음의 국경선을 건너고 있었다.
햇볕은 뜨겁고 하늘은 청명했지만, 마음은 묘하게 차분했다. 윤동주 시인의 생가를 향하는 길을 걷다 우연히 멈춰 선 것은 앵두나무 아래였다. 담장을 비집고 나온 가지 위에, 햇살이 듬뿍 내려앉은 앵두가 빨갛게 알알이 열려 있었다. 한 알을 따서 입에 넣었다. 어릴 적 외할머니 마당에서 따먹던 그 맛이었다. 단맛보다 먼저 느껴지던 시큼함, 그리고 뒤늦게 밀려오는 부드러운 달콤함. 오래전 기억은 혀끝의 감각보다 훨씬 깊은 곳에서 되살아났다.
그렇게 입 안에서 시간 한 알이 터지고 나서야, 시인의 집이 눈에 들어왔다. ‘윤동주 생가’. 색바랜 기와지붕 아래, 오래된 나무 기둥들이 제 몸을 지탱하듯 묵묵히 서 있었다. 낯선 나라에서, 낯설지 않은 이름을 마주한 순간, 나는 왠지 모를 뭉클함을 느꼈다. 한 시인의 삶이 집이라는 틀 안에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고, 그 집 앞에 선 나는 왠지 조심스러워졌다.
나는 마루에 조용히 걸터앉았다. 짧은 숨을 들이쉴 때마다, 이 집의 공기가 내 안으로 스며들었다. 바람은 고요했고, 시간은 마치 이곳에서는 뒤로 걷는 듯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문득 그 구절이 떠올랐다. 반복해 읊조려보며, 나는 내 하루를 돌아봤다.
과연 부끄럽지 않은 하루였는지, 아니 부끄럽지 않은 삶이었는지.
기념관 안 낮은 조명 아래 침묵으로 벽면을 따라 걸으며 나는 시인의 자필 시와 일기, 사진을 찬찬히 들여다 보았다. 글씨는 작고 반듯했지만, 그 속에 담긴 무게는 거대하고 깊었다.
누군가는 그를 ‘순결한 영혼’이라 불렀다. 그 말이 과하지 않음을, 나는 지금 이곳에서 확신할 수 있었다. 누구에게도 분노하지 않고, 단지 ‘어두운 밤을 새며’ 스스로를 다잡던 청년. 암울한 세상과 조용한 함성으로 싸우면서도 스스로의 내면과 조용히 마주하던 사람. 그가 남긴 시구는, 시보다 오히려 기도에 가까웠다.
나는 벽에 걸린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오래 바라보다 조용히 문밖으로 나왔다. 다시 생가의 마루에 섰을 때, 이전보다 조금 더 가볍고 맑은 기분이었다. 사람의 마음은 이상하게도, 멀리 떠나와서야 제 본모습을 드러낸다.
그가 살았던 이 집, 그가 걸었던 뒷마당, 그가 바라보았을 저 언덕 위 하늘. 모두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것이었다.
나는 돌아오는 길, 다시 앵두나무 아래에서 잠시 멈췄다. 처음과는 달리 그냥 그 열매들을 바라보았다. 따먹지 않은 앵두는 그 자체로 더 선명한 기억이었다. 씹지 않아도 이미 입 안에 번진 듯한 여운. 윤동주의 시도 그랬다.
외우지 않아도 가슴에 새겨지고, 소리 내지 않아도 스스로 되새기게 되는 문장들. 앵두 한 알을 통해 내가 떠올린 것들은, 결국 시인의 삶과 다르지 않았다.
해란강 쪽으로 다시 걸음을 옮기며, 나는 아주 조용히 시 한 편을 마음속으로 지었다.
말로 쓰지 않아도 되는 시. 그저 오늘을 조용히 살아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시. 윤동주가 그러했듯이, 나 역시 나만의 마루에 앉아, 바람 한 점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그날, 나는 한 알의 앵두와 한 채의 오랜된 집으로부터 아주 먼 여운을 얻었다. 그 여운은 백두산의 경치보다 오래 남을 것이고, 나를 부끄럽지 않게 만들 것이다.
부디, 시인의 기도처럼.
하늘을 우러러, 내 마음에도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