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향

봄동

by 조성범

봄동/조성범



새벽부터

까치가 울어대더니

낮 달 하나가 텅 빈 골목 끝

은행나무 가지에 새둥지처럼 걸려있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늘 똑같은 시간 똑같은 방향

오래도록 남은 발자국들

풀리지 않는 매듭 따라

허둥지둥 꿈을 꾸고 있다


꿈을 꾼다.

꿈을 풀었다!풀었다!

골목길 어둠 헤치고

담장 너머로 활활 아침해가 솟아오르고


아직 꿈속이라도

햇살은 따사롭고

강물은 흐르며

가지마다 움들이 움찔거리고

꽃 바람에 나비가 날아오른다


별빛 아래서

가쁜 숨 몰아쉬는 꿈속이라도

겨우내 빈 들녘에서

칼바람을 견뎌낸 배추를 봄동이라 하던가


겨울 해는 짧기만 한데

꽁꽁 언 골목길에 갈래머리 아이 나풀나풀 뛰어 가고

매거진의 이전글시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