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에 관한 이설/ 조성범
손가락에 관한 이설/ 조성범
오래전 늙은 철학자들 사이 회자된
손가락은 나무뿌리가 진화했다는 설이 있었지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모래 같은 꿈을 움켜쥐려 발버둥 치곤 해
또 어떤 연금술사들은
어쩌다 땅 밖으로 노출된
금맥으로 손가락을 창조했다 떠들기도 했어
그 증거로 많은 사람이 황금을 가지려 핏줄조차
살해하는 일이 벌어지곤 하는 걸 들이대지
번외로 여러 가지 학설과 뜬 소문이 있는데
내 손가락은 아마 두더지 주둥이가 진화했나 봐
가늘고 길기만 한 손가락은
꿈 하나, 일전 어치 금 부스러기 쥐어 보질 못하고
그저 어둠 속 겨우 한 치 앞을 긁어낼 뿐
가끔은 저 약방 영감 몰래 손작두에 슬쩍 두 손 디밀어 싹둑 잘라내 버리고
재 너머 대장장이에게 굵고 큼직한 쇠 손가락 만들어 달라고 말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지
지금은 아니야
이 가늘고 긴 못난 손가락이라도 간혹 네 고운 얼굴 쓰다듬을 수 있어 참 고맙게 여기고 있어
두더지 주둥이 같은 이 손가락으로 너에게 가는 길 조금씩 헤쳐나갈 수 있어 후회하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