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 해피엔딩 없는 여자

넷플릭스 킬링, 형사 린든에 대하여

by 백승권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얻는 방법으로 자기보다 더 불행한 타인의 경우를 찾곤 한다. 이런 접근으로 미드 킬링의 린든(미레유 에노스) 형사를 꾸준히 지켜보는 것은 '도움'이 된다. 그녀는 부모에게 버림받았고 양부모 집을 전전했으며 이혼 후 아이에게 소홀했다. 담당 사건에 지독하게 매달렸고 그 결과 누구에게도 사랑을 표현하지 않았다. 피붙이는 물론 자신조차도. 어린 시절 트라우마에서 스스로를 구원하려 어린 소녀 피해자들에게 감정 이입했고 범인을 끝 끝까지 파헤쳤다. 자기 삶이 송두리째 망가지는 한이 있더라도. 주변인들은 지속적으로 그녀에게 온정을 기대했지만 이제껏 받은 온정이 없기에 나눠줄 온정도 남아있지 않았다. 타협이 없었고 그로 인해 수많은 고통을 양산해내고 비밀을 드러낸다. 사건 해결 후에도 피폐해진 자신을 남긴다.


드라마는 그녀를 옹호하지 않는다. 다만, 끝까지 지켜본다. 연민보다 한숨이 연거푸 나온다. 방관자가 된다. 누구도 쉽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없다. 같이 수렁에 빠지기 때문에. 모두가 포기하는데 그녀 홀로 포기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온전히 세우려는 노력을. 그 성과 없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자기도 못 구하는 여자가 타인의 죽음을 파헤침으로써 남은 자들을 위로하고 그 남은 자 안에 자신을 귀속시키려 한다. 피곤에 찌들어 쭈그러든 얼굴과 퀭한 눈빛으로 온갖 욕과 비난을 감내해가며 자주 길을 잃어가며 실수하고 부딪혀가며 그렇게 계속 나아간다. 킬링은 지겹도록 그녀의 그런 모습들을 응시한다. 시리고 음습한 거대 도시 안에서 완전히 길을 잃어버린 개인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집단들이 뒤섞여 서로를 죽이고 죽어가는 가운데 자기 하나 건사하지 못하는 한 인간의 투쟁을 기대와 희망 없이 비춘다. 그뿐이다.


일장연설을 늘어놓지도, 영웅적인 면모나 멋진 대사를 남발하지도 않는다. 시종일관 흐리고 음울하며 누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는 적막하고 축축한 풍경과 인물들의 연속일 뿐이다. 그렇게 킬링은 지금껏 봤던 어떤 수사물보다 어렵고 깊은 영역을 획득한다. 보는 내내 지겨웠지만 끊을 수 없었다. 린든이란 인물은 보편적이라기엔 지독하게 어두웠지만, 그렇기에 다수가 지닌 어떤 심연과 맞닿아있는 인물 같아서다. 경우는 달라도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불쾌한 기운이 끊임없이 감돌았다. 이런 불쾌감으로 지켜봤다. 보면서 해피엔딩이 아니길 바랐다. 현실엔 없는 것을 린든에게서 보고 싶지 않았다. 관망하는 자로써 더 가학적으로 변해갔다. 린든의 행복을 바랄 수 없었다. 그것은 픽션이고 거짓이니까, 그렇게 킬링은 무자비한 사건들 속에서 다큐의 쾌감을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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