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킹스, 왕이 되기 싫었던 남자

바이킹스, 라그나에 대하여

by 백승권

모든 집단은 우두머리를 세움으로써 존속한다. 집단의 성격에 따라 우두머리를 세우는 방식이나 대하는 태도, 주어진 권한 등이 다르겠지만 비중의 차이일 뿐 우두머리의 필요성을 부정한다면 그 집단의 생명력 또한 보장할 수 없다. 꼭두각시거나 폭군이거나 그 지위의 상징성 자체로 기능한다. 이 최고의 계급에는 왕, 대통령, 두목, 대장, 가장, 영주 등 수많은 칭호가 부여된다. 라그나로스 브로크(이하 라그나, 트래비스 핌멜) 역시 왕의 지위를 부여받는다. 하지만 누구도 그를 왕으로 부르지 않는다. 모두가 왕으로 인정하지만 모두가 그를 라그나라고 부른다. 처음부터 왕은 아니었지만, 언젠가 왕의 운명처럼 길러진 사내, 히스토리채널의 미드 바이킹스는 라그나를 중심으로 한 바이킹 집단의 전투와 운명을 그린다.


거대한 영토와 많은 인구, 계급과 재정운영, 건물과 도로가 발달된 도시를 지닌, 이른바 보다 문명화된 국가의 관점에서 라그나가 이끄는 바이킹은 원시적 외향과 야만적 통치방식을 지닌 야수들의 집단으로 보일 것이다. 맞다. 라그나와 바이킹은 그렇게 존속해 왔다. 척박한 자연환경 안에서 장기적 의도보다는 그때그때 생존을 위한, 때로는 충동적으로 보일만한 선택들로 영토확장과 크고 작은 전투를 이어나간다. 내부 분열 또한 끊임없이 발생한다. 이 모두 시대와 국적을 막론하고 모든 집단들이 살아남는 방식이다. 라그나는 이런 조건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건장한 체구와 강렬한 카리스마, 생존에 대한 욕망을 지녔지만 가장 남다른 점은 사고방식이다.


그는 군림하지 않는다. 거대한 몸집으로 도끼를 휘두르며 상대의 팔다리를 분리하고 머리통을 부수는 전투를 이끌면서도 폭력성과 광기로 집단을 통치하지 않는다. 그저 같은 인간으로 공존한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생명의 유한성에 두려움을 지니고, 전장 위에서 각양각색의 전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돌격한다. 자식을 끔찍이 아끼는 아비이자 매력적인 여인을 탐하는 발정 난 사내이기도 하다. 하지만, 물러설 수 없는 상황과 맞닥뜨렸을 때, 집단의 안위를 위해 남들과 가장 다른 쪽으로 고민의 방향을 돌린다. 이지점에서 기지가 발휘된다. 누구보다 비논리적이며 충동적이고 몰이해적이지만 그들 말대로 ‘오딘이 함께 하기에’ 늘 가장 과감한 수로 목적을 달성한다. 완벽하지 않다. 자식과 아내가 있으면서 끊임없이 다른 여인에게 눈과 몸을 돌리고 자신의 그러한 점에 겸연쩍어하며 아내와 마찰을 겪는다. 또한 자신의 자리를 노리는 주변국들의 침략과 내부 갈등에 둘러싸여 수많은 고비를 지난다. 그리고 살과 뼈를 부수어 뜯어내는 처형방식으로 응징한다. 퀘스트를 수행하듯 위기를 돌파하던 그는 자신의 지위와 자기 자신의 괴리감을 직감한다. 왕은 내게 어울리는 옷인가. 내부의 장애물을 살육하고 절대적 지위에 올라선 그는 홀로 앉아 퀭한 눈빛으로 세상과 마주한다.


라그나가 바이킹 집단 내부에서 끊임없이 반대의견에 부딪히는 이유 중 하나는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모두가 그를 신뢰한다. 휘하 모든 바이킹 전사가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을 만큼 절대적이다. 하지만 그는 애초 생명과 운명을 다스린다고 믿었던 오딘 외에 다른 신의 존재 가능성을 인정하기 시작한다. 반란과도 같은 태도였다. 포로였던 성직자 애설스탠을 만난 이후, 그의 지성과 신앙심에 심취한다. 다수의 반대가 당연히 빗발쳤다. 그럼에도 그는 애설스탠을 통해 이 교도로 불리는 가톨릭을 받아들인다. 이로 인해 외교적 성과를 거두고 다양한 영토확장 시도를 꾀하게 되지만 다수가 원하지 않는 전투를 치르고 이로 인해 희생자를 발생시키며 다시 거센 반대 정서에 부딪힌다. 신의 운명 아래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것이 두렵지 않은 바이킹 사회에서 이교도 성직자로 인해 자신들의 질서가 균열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였다. 라그나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가장 멀리서 온 이방인 애셀스탠과 가장 깊은 우정과 교감을 나눈다. 외로움이 해소되는 유일한 통로였다. 라그나에게 있어 애설스탠은 신의 대리인이자, 세계에 대한 눈을 넓히게 해 주는 스승과도 같았다. 애설스탠이 비극적 최후를 맞은 후에도 라그나에게 애설스탠은 막강한 존재감으로 일상 깊숙이 작용한다. 모두가 우려한다. 리더십은 위기에 봉착한다. 하지만 라그나는 자신의 이러한 변화를 전쟁의 승리를 거두는데 완벽한 마지막 조각으로 활용한다.


죽음 앞에서 만큼 비밀이 무력해지는 순간이 또 있을까. 라그나는 바이킹 집단의 축을 뒤흔들 거대한 도박을 감행한다. 수차례 공격에도 파리의 높은 성벽이 뚫리지 않는 상황. 자신의 견고한 지위와 신에 대한 믿음으로 애설스탠에 대한 질시와 야망을 감추지 않았던 플로키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바이킹은 대패하고 있었다. 거친 기세로 물을 건너온 바이킹의 세력은 약해지고 모두 불 안 해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라그나는 죽는다. 시름시름 앓다가 관 속에 눕혀진다. 애설스탠이 죽은 뒤 번민에 빠진 그였다. 세례를 조건으로 독단적인 타협을 이룬 후 그는 힘없이 죽는다. 그의 관 앞에서 동료 전사들이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마음속에 있던 말들이 관위로 떨어진다. 그의 관이 유언대로 성벽 내의 교회로 들어간다. 거기서 라그나는 예언되었던 마지막 카드를 뽑는다.


극화된 영화와 드라마에서 수많은 우두머리를 만난다. 흔히들 하늘이 내려준 자리라 칭하며 의미를 부여한다. 그 뒤에 셀 수 없는 죽음이 도사리고 혈육과 친구마저 등 뒤로 돌리는 잔혹한 암투가 있다. 자신이 거하는 세상 안에서 가장 강력하다 여겨지는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평지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적은 수의 의자를 가져다 놓고,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어른들의 싸움이란 보통 그렇다. 지저분하고 끔찍하기 그지없다. 라그나는 조금 달랐다. 그는 신실하지도 않았고, 대의명분에 집착하지도 않았다. 개인의 욕망이 이끄는 곳에 자신의 육체를 옮겨 놓는 철없는 사내로 내내 존재했고, 모든 것을 유희화했다. 오래 장악해 온 현재의 질서에 내내 의심을 품었다. 그렇게 독보적으로 강해졌다. 아무도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것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로 인해 아무도 생각하지 않은 방식을 감행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어떤 왕과도 다른 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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