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 감독. 사도
장검을 들고 무리를 이끌며
아비의 처소 앞까지 쳐들어간 사도는
두 개의 실루엣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그때까지 미쳐 찾지 못했던
아비를 죽이지 말아야 하는 간절한 이유를 발견한다.
그는 아비를 죽이지 않아도 되었으므로 안도했을 것이다.
대신 자신을 버렸음에도.
이것이 사도의 부성애를 납득하지 못한 나의 결론이다.
자신을 경쟁자로 여기는 아비를 내내 감당할 수 없었음에도
사랑받으려 갖은 애를 썼지만 모조리 실패했고
어미와 같은 운명이 되어 철저하게 버려졌다.
사도는 죄책감을 안김으로써 끝내 자신을 각인시켰다.
아비가 자신을 버렸듯 자기도 자신을 버리는
교집합을 끝내 발견한 것이다.
이런 아이디어는 모두 자식 정조에게서 얻어낸 것이었다.
정조는 약점이며 강점,
사도의 모든 행동을 지탱하는 최대 명분이었다.
이 점이 영조와 사도의 가장 다른 점이었다.
자식을 사랑하는 방식으로,
영조는 자식을 살해했고 사도는 자신을 살해했다.
영조는 사도와 조선 누구도 버리지 못했고,
사도는 정조와 자신 사이에서
정조를 살려내기로 했다.
그렇게 하나가 죽고 남은 모두가 살았다.
형을 죽이고 왕이 된 자라는 오명에 아랑곳하지 않을 때부터
영종의 자식살해는 예견된 일이었다.
영조는 자신이 곧 조선이라는 망상적 책임감에 사로잡혀
애국과 부성애를 일치시키는 처참한 오류를 범한다.
자식을 죽여도 후손들이 이해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으리라.
자신의 지혜로움을 한치도 의심하지 않았던
절대 권위자의 말로였다.
사도를 위해 사도의 애원을 귀 기울이지 않고
사도를 위해 사도의 어미를 내치며
사도를 위해 적의 편을 들고
사도를 위해 사도를 꾸짖으며
사도를 위해 사도를 역적으로 내몰아 결국
사도를 위해 사도를 똥오줌이 뒤섞인 뒤주에 가둬
사도를 뼈와 살이 말라죽게 했다.
영조에게 조선은 실제 조선보다 늘 영적인 존재였고
영조에게 사도는 실제 사도보다 늘 유약하고 아둔하며 빗나가는,
자신과 한없이 다른 존재였기에
그런 사도에게 조선을 맡기기란 절대 안 될 일이었다.
어떻게 이룬 땅과 하늘인데.
어린 망나니에게 맡길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