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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Oct 08. 2020

더 이해받아야 하는 존재

2020년 10월 8일






어제저녁 오랜 소설책에 연필로 그어진 밑줄들을 지웠다. 도로시는 앞에 앉더니 자기도 해본다고 낑낑대며 책장을 넘기고 지우고 페이지를 구기고 조금 찢기도 했다. 안 되겠다 싶어 만류했지만 들을 리 없었다. 밑줄 지우는 일은 처음 해보는 일이고 아빠가 집중하고 있는 일이고 재밌어 보였으니까.

퇴근 내내 신체 컨디션이 최저였다. 도로시의 관심을 지우개에서 돌리고 싶었지만 무릎 위에게 밀착하고 앉아 있어 움직일 수 없었다. 도화지에 연필로 그림을 그리고 지우는 게 낫겠다 싶었다. 책을 빼앗았다. 매달렸지만 제어해야 했다. 목소리가 올라갔다. 도로시는 소리에 민감하다. 할퀴고 때리려 하길래 막았다. 도로시의 눈은 커지고 얼굴을 힘을 주어 붉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울음을 터뜨렸다. 힘이 풀리고 풀썩 안겼다. 머리를 감싸고 등을 문지르며 달랬다. 미안해, 니 잘못이 아니야. 실제로 그랬다. 처음 해보는 일이고 종이를 구기지 않고 지우는 방법도 몰랐을 텐데. 내가 틀렸다. 목소리가 올라가면 안 되었는데. 도로시는 엄마품으로 옮겨가서도 한참을 울었다. 사과하고 사과하고 사과했다. 페이지를 구기고 찢으며 가르쳐 줄 수도 있었을 텐데. 어제는 실패했다. 추스르고 같이 과일을 먹고 놀면서 다시 돌아오긴 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찜찜할 정도로 어제 미숙한 대응이 너무 아쉽다.

도로시는 키와 몸무게가 훌쩍 늘면서 움직임도 커지고 웃음도 목소리도 커졌다. 동시에 대화의 기술도 다채로워졌다. 순발력도 있고 어떤 식으로 끌고 가야 자신이 원하는 유리한 결과로 이어지는지 알고 있다. 거기에 고집이 더해지면 협상이 어려워지는 경우가 생긴다. 아이는 알고 있다. 자신의 지위를. 엄빠를 무력하게 만드는 몇 가지 키워드와 행동들을 알고 있다. 알면서 져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안전사고가 예상되거나 취침시간을 많이 넘기거나 부주의가 많이 드러날 때는 사전에 제어하려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고 사랑하고 아끼고 같이 놀고 싶은지 표현한다.

도로시도 우리 입장을 이해하는지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이해받아야 하는 대상은 부모가 아닌 아이일 수밖에 없다. 세상의 규율에 대한 숙지와 경험의 격차, 자기 몸과 마음의 제어가 어려운 아이는 관계에서 결국  약자일 수밖에 없다. 그걸 알면서도 아빠가 아닌 개인이  드러났던 이번 경우는 반성할  많다. 감정 컨트롤이 안되면 목소리가 올라가는 아빠 이미지로 각인되고 싶지 않다.  이해받아야 하는  내가 아니라 도로시여야 하니까. (거의 매일 주지만) 오늘의 선물을 고민 중이다. 내일부터는  같이 자전거를  거다. 오늘 밤엔  동화책을 읽을 거다. 그래도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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