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 하워드 감독. 힐빌리의 노래
'쓰레기 같은 가족'은 좋은 소재다. 전 인류가 겪었고 전 인류가 겪고 있으며 전 인류가 겪을 것이다. 직접 경험의 빈도는 차이가 있겠지만 존재를 부정하기는 힘들다. 가족 구성원 중 하나를 굳이 찾지 않아도, 만약 내가 쓰레기라면 우리 가족은 금세 쓰레기 같은 가족이 되기 때문이다. 국내 순화용으로 콩가루라는 표현도 있지만 콩가루는 식용으로 근사한 면이 많아서 쓰레기와 어감은 물론 뉘앙스가 많이 다르다. 많은 감독들이 다양한 국가들의 다양한 쓰레기 가족을 다양하게 그려왔다. 수십억 번 반복되었지만 계속 지켜보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가족은 (쓰레기가 아니라) 이 세상 가장 소중한 사람들로 이뤄진 가장 소중한 집단'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은 입을 틀어막고 웃으며 이에 반박하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이렇게 영화를 만든다. 비 예술가들도 같이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의 작품을 기꺼이 감상한다. '힐빌리의 노래'는 그중 하나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누구도 쉽게 떠들지 않는 진실, '쓰레기 같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난 여기서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 가장 쓰레기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남편 또는 아빠.
거의 모든 장면이 가족끼리의 싸움으로 할애된다. 남편에서 아내, 엄마에서 아이들로 이어지는 절망과 비극의 연대기. 문학으로 바라보면, 먼 나라의 참혹한 가족 서사로 받아들여지며 웅장한 슬픔으로 다가오겠지만 베브(에이미 아담스)와 제이디(가브리엘 바쏘) 입장에서는 모두 살갗을 터뜨리며 나온 피와 눈물, 공포와 절규로 직접 겪은 일들이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동네 전체가, 비슷한 고통의 표정들이 점토처럼 엮인 뻘처럼 보인다. 경찰과 의사들도 이 가족을 어찌할 수 없다. 평생을 뒤엉켜 싸우다가 한 명 한 명이 떠나면 뇌와 뼈와 심장에 구멍이 뚫린다. 설 수도 앉을 수도 없다. 자립을 배운 적이 없다. 주저앉을수록 더 깊고 낮은 어둠 속으로 인생이 허물어진다. 제이디는 자신을 낳고 길러준 사람들처럼 살 가능성이 높았다. 실패한 부모들의 거울이 페이스 허거처럼 달라붙었다. 저학력 약쟁이로 방탕하게 살다 아무도 모르게 흙이 될 수도 있었다. 모든 상황이 그렇게 만들고 있었으니까. 절박하게 기어 나와야 겨우 출발선이었다. 엄마이자 아내, 딸인 여성, 베브의 삶을 곁에서 봤다고 한들 쉽게 정의할 수 없다. 베브는 정신이 제압당한 채 나쁜 선택을 수십 년 동안 멈추지 못했다. 아빠가 엄마를 때리고 엄마가 아빠를 불태우는 모습을 보며 자란 베브는 이후 아들 제이디를 정신적 물리적으로 학대한다. 제이디는 그때마다 죽지 않기 위해 경찰에 신고해야 했다. 제이디의 누나 린지(헤일리 베넷)는 결혼과 출산 후 베브를 조금 이해하기로 했지만 이해가 개인의 삶을 구원해주지는 못했다. 마약에 절은 베브는 장성한 자식들의 숨통을 여전히 조이며 미래까지 망가뜨리고 있었다. 제이디의 할머니(글렌 클로즈)가 구걸로 연명하며 제이디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면 제이디는 마약을 팔다 취한 채 총에 맞아 거리의 시체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흐름이었다.
가족의 일부로 태어나 가족 사이에서 모든 지옥을 겪은 후 가족 구성원에 의해 새로운 기회를 얻고 새로운 가족으로 이어지는, 난감한 인간사. 가족이 주는 고통이 개인 성장의 필수 요소라면, 탄생 자체에 고통과 슬픔이 예정되어 있고 이걸 극복하지 못하면 비극 서사의 일부로 안착하는 게 수순이라는 건데, 탄생과 존재 이유에 대한 회의가 들기도 한다. 찰나의 행복이라는 걸 확대 해석하기 위해 지난 절망들을 감내해야 한다면 태어나지 않아야 하는 옵션이 보다 적극적으로 주어져야 하지 않나. 아무리 가족은 소중하고 인생은 행복으로 가는 여정이라고 주입해도 제이디가 고백한 가족사는 지구 전역에 걸쳐 개체수가 너무 많다. 지금도 행복과 희망을 세뇌당한 아이들이 얼마나 끔찍한 가정 폭력 속에서 죽어가고 있을까. 그들 중 생존자들은 자신들이 보고 느낀 걸 (또는 체화된 악영향을) 다음 세대로 얼마나 많이 살포할까. 인간이 몸을 섞은 결과물들이 생산자들의 관리 실패로 인해 사지로 내몰리고 악순환으로 주변이 초토화된다. 이걸 기어이 견디는 게 삶이어야 한다면, 인간의 성장기란 그저 환경 적응에 성공한 자들을 추출하기 위한 체인가. 모든 삶엔 각자의 정의가 있겠지만, (가장 내밀한 사회적 조직인) 가정과 가족의 암묵적 부조리는 개인의 삶을 파괴할 뿐이다. 그 주변과 남은 시간까지 도미노처럼 모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