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프러제트, 이것은 우리의 싸움

사라 가브론 감독. 서프러제트

by 백승권



불균형

인간은 자신과 세계의 불완전함을
선천적으로 인지하고 태어났는지
아니면 자신의 불완전함을 먼저 인지하고
이후 그 불완전한 시선으로 세계를 인지해서
눈에 보이고 귀로 들리며 손으로 만져지는
모든 것을 불완전하게 인식해서 인지
또는 노력해도 완전해질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한계와 분노를 느낀 나머지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불온하고 불균형하게 정의하고
다시 말해 자신만을 온전한 기준으로 삼은 채
남은 것들에게 낮은 계급을 부여한 것인지

늘 기울어져 있다
적어도 그런 상태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시행착오를 겪었음에도
균형에 대한 학습이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다

불가능의 영역.
매우 강력한 본능일지라도
수많은 환경적 사회적 자극이 지속된다면
일말의 변화라도 시도했을 법 한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태초의 기본 틀을 짐작할 수 없지만
기득권을 잡은, 잡았다고 여기는,
태초 자신을 주인이라고 여긴 족속들이
점점 세력을 불리며 기존의 역할을 고정시키고
바꾸려 들지 않는다

생존이 관건이었던 시기에
다양한 변수를 죽음의 위협으로 인지해서인지
이것이 유전자에 깊숙이 내재되어 있어서인지
글과 말을 깨우치고 서로 다른 종족끼리 이성적 감성적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도 나아지지 않는,
전혀 나아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로 인해
죽이지 않으면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는
시대의 야만을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절감하는 계층이 있다

아프리카 이름 모를 부족이 아니다

여자, 아니 여성.
남성은 자신의 비교적 발달된 근육과 단단한 뼈에
그로 인해 짐승을 사냥하고 나무를 베어 나를 수 있다는 점에
지나친 의미 부여를, 권력으로까지 스스로 인정해서인지
무지를 고착화 시키는데 모든 자원을 총동원한다

여성을 하나의 인간이 아닌,
때려잡아 허기를 채우거나, 길들여 기능적 역할만 맡기는
짐승의 영역으로 한정시킨 것이다

지성은 변수였다

여자들은 자신들이 처한 문제가
시간에 맡긴다고 나아지지 않음을 절감하게 되었다.
집단의 감정은 소수의 행동가들에 의해
거대한 변혁의 물결을 타게 된다

아무리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남성들에게 호소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그녀들은 뜻을 모은다
생각과 의지를 실행할 수 있는 여성들이 무리를 이룬다
외친다. 세상은 기울어져 있다고
완전한 전복이 아닌, 말과 글을 깨우치듯
사회적 지위에도 균형이 이뤄져야 한다고

태어날 때 돌출된 성기를 지녔다는 이유만으로
왜 남성이 평생 여성보다 나은 대우와 지위를 보장받아야 하는가
이는 남성의 지위를 추락시키자는 의도가 아니다
미래를 위해 후손들을 위해 세상의 평화로운 존속을 위해
예견된 불안과 불행을 방지하기 위해
조금 더 현재의 중심을 개선, 더 나아지게 만들기를
같이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게 필요하다.
왜 같은 인간으로서 권리의 차별이 있어야 하는가
표현과 판단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야 하는가

그녀들의 요구한다
이것은 마치 같이 숨 쉴 공기를 요구하는 것,
햇빛을 요구하는 것, 물과 소금과도 같은 것,

투표권.

세상을 이끌어가는 모든 의사결정이
왜 절반에 의해서만 이루어져야 하는가
그들이 총과 활을 더 잘 쏴서?
정자를 만들 줄 알아서?
목소리가 굵어서?

기본권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전까지 어떤 여성도 제대로 아니 전혀 누리지 못한 기본의 권리.

부와 권력을 쥔 남자를 남편으로 둔, 그래서 보다 나은 혜택을 누리고 있는
(하지만 여전히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삶을 박탈당하고 있는) 소수의 여성들과
오랜 기간 지성의 축적과 행동의 의지를 지닌 소수의 여성들과
대물림을 통해 지독한 차별과 폭력, 불합리한 대우와 낮은 소득 등
짐승과도 같은 대우를 당하고 있는 절대다수의 여성들이
한자리로 모인다

그리고 남자와 권력자, 같은 처지의 여자들을 향해 외친다.

Votes for Women


20세기 초 영국이었다
처음엔 아무도 듣지 않았지만
이름 모를 누군가가 곤봉에 맞아 쓰러지고
발길질을 당하고, 피투성이가 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치고 외치고 외치고
외쳤을 때 조금씩 다른 이들의 마음도 움직였다
저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라는 궁금증
알고 보니 그것이 바로 현실과 피부에 맞닿아 있다는 진실
하지만 강력한 집권층 바로 남성들이 이를 두려워하며
싹을 제거하려는 움직임까지-

희생은 도화선이 된다
뜻을 가진 발걸음이 하나둘 모이지만
저항은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어서
밥도 먹도 돈도 벌고 가족도 챙겨야 하는 것이어서
이렇게 살기도 빠듯한 삶에
한정된 시간의 자원을 쪼개야 하는 것이어서
뒤늦게 합류한 모드 와츠(캐리 멀리건)는
직장과 남편(벤 위쇼), 아이까지 잃고 만다
그녀가 버린 것이 아니라
여성의 투표권을 반대하는 남성의 사회가
앗아간 것이었다

모드가 아이와 헤어지는 장면은
무너지는 슬픔과 걷잡을 수 없는 분노로
조각조각 나 있었다
모드의 신체와 정신이 그녀가 그때까지 겪었던 어떤
충격보다 더 격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붕괴된 세상에서 그녀의 눈빛은 더 견고해진다
잃지 말아야 할 것을 잃어버린 인간으로 그녀는 바뀌어 있었다
분노는 정밀한 계획이 되었고 실행이 되었다
동료들의 생활 역시 부서지고 있었고
연합은 단절되고 약속은 지켜지지 못한다

그리고 가장 많은 이들에게 호소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기회 앞에서
모드는 동료를 잃는다.

스스로 선택한 한 여성의 죽음으로 인해 그제야,
세상은 여성이 갖지 못한 것에 대한 관심을 보인다
그리고 다수의 관심은 다수의 움직임이 되고
불길은 대기를 태우는 태양이 된다

이 사건 하나로 전 세계 여성이 동시에 참정권을 얻은 것은 아니지만
이후 세계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여성의 투표권이 인정되기 시작했다
수많은 희생이 이뤄낸 진보였다

불과 수십 년 전의 일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남성과 여성의 권리는
완전히 같은가.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세상은 여전히 서로의 무지를 일깨우기 위해
스스로에게 폭력을 가하고 흉내 낼 수 없는 인내로 대치하고 있다
단기적인 이익에 머물렀다면
금세 오염되고 산화되었을 것을
하나가 죽으면 남은 하나가
10년이 지나도 개선되지 않으면 다음 10년 동안에도 계속
100년이 지나더라도 그렇게 계속 계속
더 나은 균형을 향한 저항은 끝나지 않는다

눈앞에서 본다면
개인과 개인의 싸움이라고 보일 수 있지만
이것은 세상과 세상의 싸움
애초 기울어졌던 세상과 이를 더 많은 다수를 위해
고쳐 놓으려는 자들의 세상의 싸움
기존의 질서에서 평안했던 자들과
남은 생 내내 불편하더라도
다음 생의 평화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들의 싸움
모두가 속해 있고
어느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싸움

이것은 우리의 싸움
지금의 싸움
더 인간적인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나와 당신의 싸움

인간이기에 반드시 이겨야 하는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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