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람 감독. 피의 연대기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영화 캐리(1978)는 피를 뒤집어쓴 고교생의 스틸컷으로 유명하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전체적으로 생리에 대한 남성 예술가의 관점으로 보이기도 했다. 러닝타임 내내 화면을 뒤덮는 (여성의 낯선 모습에 대한) 거리감, 신비감, 두려움, 공포... 판타지 장르로 표현하기 위한 완전에 가까운 조건들. 이로부터 40년 후에 개봉한 김보람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피의 연대기(2018)는 생리와 생리대에 대한 쉽고 친절한 가이드다. 생리를 모르는 사람이 어딨다고 이제 와서 생리 운운인가 라고 생각했다면 당신은 적어도 남자이거나 생리를 모르거나 둘 다일 것이다.
남성의 신체 작용 중 여성의 생리에 비견될 것은 없다. 어떤 남성도 1달에 1번, 1년에 12번, 평생 400회, 10리터에 달하는 피를 흘리지 않는다. 여자 친구, 아내, 딸이 있고 그들이 생리를 한다고 (그들과 가장 가까운 남성 중 하나인) 나도 생리에 대해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나. 아마 대다수 입을 다물 것이다. 겸연쩍거나 예의를 갖추는 게 아닌 정말 몰라서다. 정말 모른다. (일부 여성들이) 스스로의 피가 묻은 천을 빨면서 후천적으로 부여한 생명 활동의 순환과 가치에 대하여 생각해볼 수는 있겠지만, 이 번거로운 행위가 여성 인류의 역사와 내내 같이 했다는 건 당연하면서도 많이 놀랍다. 다시 말하고 계속 말하겠지만 생리는, 남성에겐 해당되지 않(았)으니까.
남성의 몸과 남성의 일상과 남성의 역사와 분리된 일이라고 여겨졌으니까. 인류의 역사 내내 남성들끼리 자리싸움하며 지지고 볶아온 걸 생각해보면 여성과 여성의 생리에 대한 외면과 소외감은 그 깊이와 너비를 가늠할 수 없다. 간단히 계산해도 생리 가능 나이의 1/4를 생리대와 밀접하게 연계된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남성 중심의 사회는 여전히 지금까지도 선을 긋고 있다. (생리대의) 절대적 수요를 감지한 일부 남성들이 여성의 생리를 마케팅 대상으로 볼뿐. 경험도 없고 방향도 다른데 '여성을 위한' 해결책이 고안될 리 없다. 그나마 여성이 쟁취한 사회적 지위가 점진적으로 상향 평준화되면서 여성이 만든 여성을 위한 생리대의 혜택을 겨우 (여성들이) 누리게 되었을 뿐이다. 이렇게 적고 있는 나도 한 달에 한번 속옷을 밑으로 내리고 생리컵을 구긴 후 몸을 한껏 구부려 모든 이물감을 애써 무시한 채 질 안쪽으로 깊숙이 집어넣을 일은 없다. 다른 성별과 신체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여성들보다 덜 번거로운 혜택을 누린다.
'피의 연대기'는 무지한 남성들을 힐난하는데 분량을 소모하지 않는다. 다만 일정 나이대를 지날 수밖에 없는 모든 여성이 겪고 있는 생리에 대해 다양한 직군의 인터뷰와 사회적 시선에 대한 모니터링을 통해 (남성 중심의) 대중들의 오랜 무지와 무감함, 이로 인해 합의된 침묵(의도한 무지에 의한 폭력성)을 터치한다. 이런 압박과 편견을 넘고 다음 여성 세대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분투해왔는지,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 조명한다. (남성 입장에서 여성을 볼 때) 단순히 예민한 날, 기분이 별로인 날, 평소보다 더 이해해줘야 하는 날이 아닌, 지식과 정보를 통해 지금보다 훨씬 나은 상태로 개선해야 하는 문제로 인식하도록 돕는다. 문제, 얼마나 많은 문제들이 해결과 개선을 위한 시도를 거친 후 그 전보다 나아졌나. 노년의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대화하는 로봇이 만들어지고, 자율 주행 자동차가 나오는 세상에서 왜 아직도 생리라는 -수면에 버금가는 규칙성을 지닌 신체 활동이- 왜 외면되어야 하나. 생리가 기후변화나 마약범죄보다 개선되기 어려운 종말론적 사안인가.
인류가 섹스라는 소재에 접근하는 정성의 반에 반에 반만큼이라도 기울여, (인류의 반인) 여성의 생리를 다루는 더 많은 콘텐츠가 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덜 찾아보거나 이 분야에 대한 앎이 얕아서 하는 말일 수도 있다.) 피의 연대기가 생리를 시작하는 시기의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필수 감상 콘텐츠나 교육 자료로 이용되면 좋겠다. 무지는 죄가 아니지만 무지를 방치하는 건 이야기가 다르다. 신체에 대한 정보의 격차가 줄어든다면 서로에 대한 태도와 배려 역시 비슷한 수준으로 완만해지지 않을까. 로마군이 어떻게 싸웠고 마약이 어떻게 유통되고 있으며 연쇄살인범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넷플릭스에서 유통되는) 매력적인 소재가 될 수 있겠지만, 더 많은 이들에게 생리에 대한 이야기가 좀 더 필요하다. 생리를 이야기하는 여성들에 대한 경청이 더 필요하다. 돈벌이 대상이 아닌, 가장 가까운 곳에서 공존하는 여성들의 일생과 일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는 방식으로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