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디 윙, 레이첼 그래디 감독. 홀로 걷다
통제가 공동체 생존의 필수 요건이라면, 구성원들을 설득하고 동의를 얻는 것 또한 필수 요건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통제에 동원되는 규율과 행동지침들은 협의를 거쳐 수정되어야 한다. 현대사회에서 이걸 모르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알면서도 소수의 편의와 기존 질서의 견지를 통해 얻어지는 이익 때문에 무시되거나 개선되지 않을 뿐이다. 이런 부조리가 늘어날수록 이탈자들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공동체는 기존 규율에 이의를 제기하는 자들을 반기지 않는다. 새로운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통제를 주도하는 세력들을 번거롭게 하고 권력을 축소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강력한 규율로 통제되는 공동체는 개인의 자유를 애초 허용하지 않는다. 마치 자유와 선택권이 없는 게 당연한 것처럼 철저하게 압박하고 감시하며 기존의 질서를 해치지 않으려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 '하시디즘 공동체는 초정통파 유대인들의 배타적인 조직이다. 18세기 동유럽에서 시작된 공동체로 유대인 대학살 때 수많은 하시디즘 유대인이 희생됐고 많은 유대인이 뉴욕 브루클린으로 도망쳤다.' 하시디즘 공공체에서는 만인 앞에서 강간을 당해도 모두가 침묵으로 일관하고, 남편이 아이와 아내를 학대해도 처벌당하지 않으며, 아이들은 도서관 입장이 절대 허락되지 않고 인터넷 사용도 금지된다. 강간 피해자는 공동체를 이탈하는 순간 배신자로 평생의 지인들로부터 낙인찍히고, 학대당한 아내는 남편과 헤어져 공동체를 이탈하려는 순간 미행당하고 아이들 전부를 빼앗기며, 아이들은 자라는 내내 협소한 규모의 학습으로 공동체 바깥의 일반적인 아이들과 정보와 지식의 격차가 엄청나게 벌어진다. 이게 진정 하시디즘 공동체가 수세기를 걸쳐 믿고 따르며 설파하는 유대교 신의 위대한 뜻인가.
사는 내내 규율 압박에 정신과 육체가 길들여지고 모든 인간관계를 맺은 신앙 공동체를 벗어나는 일은 클릭 한 번이면 완료되는 네이버 카페 회원 탈퇴와 다르다. 공동체 이탈을 선언하는 순간, 가족과 지인, 친구 어느 누구도 영영 연락하지 않는다. 도움도 위로도 없다. 강간, 가정폭력 등 공동체의 일원에게 당한 일로 재판을 해야 하는 경우, 개인이 아닌 공동체와 싸우게 된다. 공동체의 명성에 흠을 입히는 행위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구성원의 권리는 없다. 공동체가 먼저, 아니 전부다. 개인은 없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홀로 걷다'를 보며 가장 미어졌던 부분은 아이들과 자신을 향한 남편의 오랜 학대를 고발하며 하시디즘 공동체를 떠나기로 한 여성의 에피소드였다. 하시디즘 공동체는 고액의 전문 변호인단을 동원해 남편을 호위하고 여성의 주장을 묵살했으며 미행까지 했다. 양육권이 핵심이었던 재판은 힘겨웠고 결국 여성은 재판에서 이기지 못한다. 일주일에 한 시간, 담당자 동행 하에 아이들과 만나는 게 겨우 허용되었을 뿐. 유대교의 신은 이 여성에게 아무 의미 없는 존재일 뿐이다.
현대의 신은 추종자들의 믿음과 이 믿음의 실행으로 인해 존재한다. 신이 직접 하는 일은 없다. 한 예로 성경 같은 오랜 기록물에 신의 아들이라 스스로 칭하는 자가 행한 여러 기적과 선택, 결정과 대화들이 있지만 이 역시 한 지역의 역사와 민족의 이동을 토대로 쓰인 설화에 가깝다. 현대에 남은 건 추종하는 인간들이다. 그들이 자신이 신의 뜻을 행한다고 주장한다. 신의 뜻으로 공동체와 구성원들을 이롭게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신(들)은 아이에게 폭탄 조끼를 입히고 도심 빌딩에 항공기를 추락시키며 남편을 무조건 섬기라고 하고 공동체의 이익에 반하는 일은 죽을 때까지 침묵하고 견디라고 한다. 인간의 입과 생각을 통해 필터링된 신의 뜻은 추종자들과 그 후손들을 통제하고 고립을 자처하며 소수의 권력을 전체의 입지로 착각하게 만든다. 추종자들이 없다면 신도 없는 셈이다. 나치에게 잔혹하게 탄압당하던 유대 민족의 후손들이 내부의 일원들을 탄압하며 공동체의 생존을 연명하는 과정은 아이러니하다. 약자를 대하는 그들의 운영시스템은 불과 몇십 년 전 그들의 가족들이 당했던 대우와 다르지 않다. 그들의 책에서 모든 여성의 얼굴을 완전히 지웠듯이 나치 역시 그들이 꿈꾸던 미래에서 유대인을 지우려 했으니까. 대량 학살이 아니라고 학살이 아닌 건 아니다.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