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조각들, 고요한 비명 속에서

문드르초 코르넬 감독. 그녀의 조각들

by 백승권

마사와 숀은 간절했다. 결혼, 임신, 초음파 사진, 태어날 아이를 위해 예쁘게 꾸민 방, 만삭의 마사는 기대와 긴장 섞인 몸으로 신호를 기다렸다. 남편 숀은 곁에서 안절부절못했지만 의사가 아닌 이상 결정적인 도움은 될 수 없었다. 진통이 시작되고 그들은 여전히 집이었다. 병원에 가지 않는다. 마사는 가정분만을 강렬히 원했다. 예정된 산파가 오지 않았다. 다른 산파가 급히 왔고 출산 과정을 도왔다. 아이는 나왔다. 그리고 새로운 생명을 맞이하는 흥분이 식기도 전에 생을 마감했다. 울고 숨 쉬던 극도로 짧은 시간. 마사와 숀의 삶도 거기까지 였다. 이후 둘은 완전히 무너진다. 회복은 불가능했다. 아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어떤 의사도 의학적으로 설득력 있게 설명하기 힘든 사건이었다. 숀(샤이아 라보프)은 주변 모든 걸 파괴할 듯 울분에 몸을 떨고, 마사는 고요했다. 마사(바네사 커비)는 격랑 속에서 침몰하는 작은 배처럼 고요했다. 내면의 비명마저 수장시키려는 듯, 마사는 슬픔과 고통을 표면화시키지 않는다. 삼키다 죽을 듯이 마사는 고요했다. 이런 마사를 흔드는 건 아이와 행복한 순간을 즐기는 다른 가족의 모습이 아닌 마사의 엄마였다. 마사의 일을 주변에 알리고 마사를 무례에 시달리도록 옥죈다. 마사는 폭발한다. 숀과의 균열 역시 수순이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전가시킬 대상이 필요했다. 주변의 조언에 힘입어 숀과 마사는 산파를 법정에 세우기로 한다. 산파를 살인자로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 부모였던 자신들의 무고함을 증명할 수 있었다.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스스로를 속이려는 시도들, 지난 과오를 지우려는 동안에도 죄는 계속 이어졌다.


부유한 집안과 안정적 사회적 지위를 지닌 마사에게 피해보상금 협의는 목적이 아니었다. 재판 결과가 무엇이든 떠난 아이는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속죄를 위한 재물이 필요했을 뿐이다. 게다가 산파의 전력까지 더해져 승소 확률이 높았다. 재판정에서 오가는 질문과 답변, 변론 속에서 아이의 부재는 끝없이 언급되고 있었다. 아이가 여기 없다는 사실과 앞으로도 만날 수 없다는 진실만이 재차 확인될 뿐이었다. 마사는 견디기 힘들었고 어서 누구라도 이 형벌을 대신 짊어진 채 자기 대신 사라지길 염원했다. 타인의 유죄가 선언되어야 자신의 무죄가 공식적으로 입증되는 것처럼 여겨졌다. 내가 죽인 게 아니야. 내 고집이 그때의 결정이 아이의 숨을 앗아갔을 리 없어. 병원에서 출산했어도 마찬가지였을지도 몰라. 하지만 집에서 낳다가 그랬으니 산파도 혐의를 피할 수 없어, 아니 산파가 죽인 거나 다름없는 거야. 그 산파 내가 부른 사람도 아냐. 내가 아냐 산파가 살인자야. 나는 내 불쌍한 아이는, 피해자이자 희생자야. 재판이 휴정되는 동안 마사는 과거의 아이와 마주한다. 그제야 마사는 받아들인다.


아이가 잠시라도 살아있던 순간에 집중하기로 한다. 그 잠시로 인해 마사는 생의 다른 명분을 얻을 수 있었다. 세상의 어디에 있든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었다.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비극의 책임을 타인에게 모두 집어던지고 나만 새 출발하는 옵션은 없었다. 사과향으로 기억될 아이, 아직 발아하지 않은 사과 씨앗을 바라보며 마사는 자신의 생을 다른 각도로 돌리기로 한다. 아이가 떠나던 순간, 마사의 일부도 완전히 조각났지만 생의 남은 시간과 의지에게 기회를 주도록 한다. 만인 앞에서 자신이 기억하는 진실을 토로한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끊어진 대교는 완공되어 도심과 도심을 잇는다. 손톱보다 작던 씨앗은 울창한 거목이 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마사는 한 아이의 이름을 다정히 부른다. 숀은 보이지 않는다. 현재인지 환상인지 알길 없다. 마사가 무엇을 염원하는지 짐작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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