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저씨, 우리는 지옥에서 만났습니다

연출 김원석. 극본 박해영. 나의 아저씨

by 백승권

끊임없이 몸이 불타오르는 고통 속에서 죽지 못하는 게 지옥에 대한 묘사의 일부라면, 지안과 동훈의 일상은 지옥에 가까운 게 맞다. 죽지 못해 견딜 뿐 죽음에 이르지 못하는 시간들, 태어난 게 혹시 형벌은 아닐까 의심들 정도로, 걸어갈수록 걸어갈수록 지면이 기운다. 이보다 더 낮은 곳이 없다고 여기는 순간 낮은 곳에서 더 낮은 곳으로 몸과 정신이 꺼져간다. 누군가의 자식이라는 저주, 지안은 어미의 사채 속에서 모든 호흡을 약탈당한다. 낮을 빼앗긴다. 늦은 밤, 불 꺼진 방 안에서 음식쓰레기와 커피믹스로 허기를 채운다. 혹한 속 냉방에서 할머니에게 이불을 모두 주고 밤새 덜덜 떤다. 씻길 리 없는 피로를 뒤집어쓰고 돈을 벌러 새벽 지하철에 오른다. 얼마나 많이 죽음을 떠올렸을까. 살인을 저질렀다. 공공장소에서 그랬다면 용감한 시민상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살인은 누군가의 가족을 죽이는 일, 죽은(죽인) 자의 자손에게 방향 잃은 증오와 뼈와 살이 부서지는 폭력을 당한다. 스무 살, 작은 체구, 핏기 가신 얼굴, 어둡고 퀭한 눈빛, 이지안은 할머니가 죽을 때까지만 살기로 한 듯, 할머니의 수명을 연장하며 자신을 느리게 죽인다. 자신의 과거를 모르는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는다. 도망갈 테니까. 난 부모가 없어. 난 사채에 쫓겨. 난 살인을 했어. 호의는 지속되지 않을 테니까. 입은 다물고 눈은 마주치지 않는다. 살아도 죽은 삶, 이미 죽은 삶, 죽은 상태에서 더 나아지지 않는 삶, 이지안의, 박동훈(이선균)을 만나기 전 이지안(이지은, 아이유)의 삶.


짐승들이 서로의 둔부를 냄새 맡으며 피아를 식별하듯, 동훈은 지안을 보는 순간 같은 종의 인간이란 걸 간파한다. 나처럼 산채로 죽어 있는 지옥에서 사는 인간이 또 있었다니. 내가 너무 불쌍해서 나 같은 너도 그렇게 불쌍했다. 꺼져가는 숨 속에서 웃을 힘도 없이 밤공기 속으로 파이팅을 뱉었다. 그 파이팅을 얼마 후 홀로 오열하는 길바닥 위에서 다시 돌려주었다. 파이팅. 인간은 죽기 직전 어른이 될까. 지겨운 내가 커서 고작 내가 되는 삶, 동훈은 모든 걸 참았고 모든 걸 침묵했으며 그만큼 모든 고통 속에 자신을 밀어 넣었다.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겨우 짐작만 할 뿐, 동훈은 내내 혼자였고 꽉 찬 술집 속에서도 혼자가 아닌 적 없었다. 희생만 하는 어미와 끈끈한 형제들 속에서 그는 늘 혼자를 자처했다. 고립을 평화의 재료처럼 다뤘다. 그는 그런 자신이 불쌍했고 지옥은 점점 더 뜨거워지고 신경을 갈갈이 찢어발기고 있었다. 가장 가까운 자가 원수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렇게 둘이 작당하며 자신을 죽이고 있었다. 은밀히 몸을 섞으며 고립을 자처한 자의 삶을 비웃고 있었다. 건물이 무너지지 않도록 막는 동안 동훈의 삶은 한도 끝도 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어떤 구조기술사도 동훈의 붕괴를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지옥에서 사는 자라면 자격이 합당했다. 서로의 지옥을 알아본 순간 지안과 동훈은 서로가 더 무너지지 않도록 온몸으로 받친다. 처음 겪는 일이었다. 이 최초의 관계에서 둘은 불법과 선의, 우연 아닌 우연과 무지로 엮여 있었다. 둘은 서로의 거울이 되어 2인 3각으로 몸뚱이를 끌고 가고 있었다. 최후의 방향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죽더라도 너는 살려야 했다. 둘의 지옥은 하나가 된다.


현세의 어른들에게 이 동화는 믿기 힘든 진실을 전한다. 하루라는 지옥 속에서 나의 고통과 슬픔은 유일하지 않다고.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또 다른 지옥을 겪으며 누군가 오열하고 있다고. 자신 같은 타인의 고통을 목도하는 순간, 비로소 위로가 시작된다고. 너의 지옥이 이토록 반가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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