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호, 너 없는 우주에서 외양간을 고치고 있어

조성희 감독. 승리호

by 백승권

돈을 버는 목적은 각자 다르다. 버는 행위에 몰입하다 보면 목적을 상실하기도 한다. 현타가 오기도 하지만 멈추면 불안하니까. 불안해서 목적을 잃은 행위에 다시 몰두한다. 인생에 가치를 둔다는 거, 캬... 얼마나 근사해. 하지만 진지하게 접근할 수 있는 건 상위 소수의 몫이다. 나머지에겐 자리가 없다. 시간이 없다. 여유가 없다. 망한 지구만 남았을 뿐, 망한 정도가 아니라 말 그대로 전인류 폭멸 직전이다. 이주한 극소수를 제외하고 모두 우주의 역사에서 지워질 것이다. 상황이 이래도 생업의 현장이 된 우주의 일부는 분주하다. 미래에도 희망은 없다. 장밋빛 시절이 있기도 했지. 그런데 지금은 지워지지 않는 핏물만 그득하다. 김태호(송중기)는 딸을 잃었다. 우주에서 남은 삶은 자책과 사죄의 시간이었다.


피붙이의 죽음만큼 강한 동기부여는 거의 없다. 물론 이걸 감정 만의 영역으로 옮겨 (오로지 금전적 이익을 위해) 캐릭터 세탁하는 자들도 있다. 김태호는 그 정도는 아니다. 한때 톱클래스 군인이었고 지금은 바닥이다. 바닥에서 먹고살려고 바둥거리다 딸을 잃었다. 잃기 전 딸의 요청을 외면한 기억은 죽어서도 선명할 것이다. 떠도는 시신이라도 찾고 싶은데 돈이 없다. 누가 숨기고 안 주는 게 아니다. 돈이 없어서 찾을 수가 없다. 돈이 있으면 완전히 사라지기 전 위치라도 파악해 인사라도 할 수 있다. 지금은 불가능하다. 돈이. 없으. 니까. 성별과 외모를 바꾸고 싶은 로봇(유해진), 임꺽정 코스프레하던 전직 깡패(진선규), 미모와 성깔, 천재력 다 갖춘 선장(김태리) 등등 승리호 나머지 팀원들과 사정이 좀 다르다.


지구를 왜 소외받고 도망 다니고 죄지은 자들이 지켜야 하나. 있는 애들은 수목원 같은 무릉도원에서 놀고먹는데. 남은 세상을 좋게 만드는 건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돈 구할 시간도 없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 프로젝트. 하지만 당장이라도 끝장 날 세상, 굳이 나 같은 죄인의 수를 늘릴 필요 없으니까. 시신 안치소를 들락거리며 눈 감은 얼굴만 기약 없이 확인하는, 나 같은 지옥의 개수를 늘릴 필요는 없을 테니까. 송아지 한 마리 구출해서 남은 소와 송아지, 외양간을 고칠 수 있다면. 다른 모든 딸들이 살아남을 수 있다면. 이것이 너 없는 우주에서 내게 남은 유일한 참회. 시도하다가 죽어도 사후세계에서 너에게 전할 그럴듯한 변명. 우주 쓰레기를 처리하던 승리호의 김태호는 지구마저 쓰레기가 되는 걸 막기 위해 전부를 건다. 세월호가 떠올랐다. 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사고로 자식을 잃은 이야길 담은 모든 영화에서 떠오를 것이다.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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