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미러, 기계에게 쫓기는 삶에 대하여

데이비드 슬레이드 감독. 블랙 미러: 사냥개

by 백승권






어린이는 따라 해선 안 되겠지만, 잠시 숨을 멈춘다고 영영 눈을 감는 일은 드물다. 콘크리트 비탈길을 오르다가 넘어져 무릎이나 손바닥이 까져도 구급차를 불러야 할 정도로 목숨이 위태로운 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의견 없이 태어나 노화로 인해 강제 자연사한다. 이를 세밀한 부분을 조정하는 기술은 끊임없이 나오고 적용하고 있지만 일부분일 뿐이다. 삶과 죽음의 시작과 끝은 애초 인간의 관할 영역이 아니다. 사고하는 능력은 주어졌지만 탄생과 죽음에 대해 구성원 대다수가 동의하고 납득할만한 정의를 이끌어내는 건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이다. 연구하고 분석하며 이 과정의 작은 결과들을 유익한 방향으로 가져올 뿐, ON/OFF 버튼을 누르고 직접 끌 수 없다. 자살? 이게 당사자의 순수한 의지인가. 결론에 이르는 맥락들이 모두 다르다. 차라리 탄생의 강제성과 더 닮아 있다. 세상에 나오고 싶어 나오지 않듯, 세상을 나가고 싶어 나갈 수 없다. 여기에 명분과 이유가 덧붙여지는 건 뚜렷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가장 살고 싶어서 가장 죽어가는 게, 측면에서 바라본 삶의 인포그래픽이다. 미약하고 다양하고 허무하다.


셋이 창고를 털다가 한 명만 남는다. 잠입해 박스 하나 챙기려다가 머리가 터진다. 처형자는 자비가 없다. 처형자는 사람이 아니다. 처형자는 얼굴이 없다. 처형자는 감정이 없고 오직 판단과 실행만 할 뿐이다. 남자들은 죽고 홀로 남은 여자는 쫓긴다. 네발 달린 짐승처럼 디자인된 목 없는 기계가 총구가 달린 다리를 이끌고 인간을 쫓는다.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지인에게 마지막 선물을 가져다주려던 인간은 색 없는 세계에서 살인 병기에게 쫓긴다. 인간은 자동차와 달리기, 총 등을 통해 자기 목숨을 구해야 한다. 하지만 기계는 자동차만큼 빠르고 화력이 강한 총기를 장착하고 있다. 절명의 상황, 인간은 기계의 학습능력을 역이용해 위기에서 빠져나온다. 집이 보인다. 차가 보인다. 내 집 아닌, 내 차가 아닌, 하지만 잠시 숨을 수 있는, 또는 마지막 결전을 치를 곳.


인간의 총구는 기계의 전면 센서를 날린다. 일단은 여기서 끝이라고 여겼다. 더 이상의 추격은 없다고. 하지만 기계는 인간의 행동 패턴과 심리를 예측하고 분석해서 만들어졌다. 인간이 안도하는 타이밍을 알고 있다. 전원이 꺼진 듯한 기계에서 인간의 피부를 찢으며 파고드는 금속 파편이 날아온다. 몸에 박힌다. 당장 장기의 기능이 멈추지는 않겠지만 몸 곳곳 깊숙이 박힌 금속 파편에는 반짝거리는 램프가 달려 있다. 마치 추적 신호를 보내는 듯이. 이미 파낸 적 있고 날카로운 도구로 피부와 근육을 찢어 파낼 경우 엄청난 출혈과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심할 경우 목숨까지 위협할 수 있다. 인간은 거울을 본다. 피투성이, 지친 표정, 반짝이는 파편들. 방금 파괴한 기계와 똑같은 디자인의 기계들이 스멀스멀 몰려오고 있었다. 인간은 결단을 내린다.


기존 인류의 흔적이 사라진 세상, 여성과 기계만 남아 벌이는 사투, 심지어 기계의 디자인도 쉽게 검색할 수 있는 군용 로봇 디자인과 유사하다. 이런 스토리와 마주하면 오래전 본 애니 매트릭스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스스로 판단하며 인간 세계를 장악한 기계(컴퓨터)는 인간을 원료로 쓰기로 결정하는 데, 당연히 저항이 발생한다. 가끔 독재정권의 고문 과정에서 "영혼을 말살"한다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여기서도 비슷한 방식이 나온다. 저항하는 인간을 없애는 과정에서 기계(로봇 군인)는 인간에게 가장 고통을 주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인간에게 어떤 물리적 가해를 가했을 때 가장 고통스러운지 하는지 알기 때문에. 소름 끼쳤다. 하지만 기계는 감정이 없으니까. 입력과 실행만 있을 뿐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블랙 미러: 사냥개>를 보면서도 비슷한 기분에 휩싸였다. 언젠가 인간보다 인간을 더 잘 아는 기계들이 격차 큰 전투력으로 대다수의 인간을 제거할지도 모른다고. 그때의 대량 학살은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와는 다른 양상일 거라고. 우연으로 인한 생존은 가능하지 않을 거라고. 생존 확률은 있겠지만 그 확률을 0으로 만드는 게 최종 목표일 거라고.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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