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희경 극본 김규태 연출. 우리들의 블루스
제주 바다는 말이 없고 사람들은 죽느라 바쁘다. 차마 누구도 바다를 증오하지 못하는 동안에도 섬 위의 인간들은 수없이 죽고 사라졌다. 엄마가 죽고 아빠가 죽고 딸이 죽고 아들이 죽고 친구가 죽었다. 남은 자들은 죽은 자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살아있는 척하며 죽어갔다. 살아남은 고통과 살아있는 슬픔을 감추지 않았다. 감출 재주가 있었다면 섬을 떠나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혹시 이곳은 오래전 죽은 자들이 자신이 죽은 줄 모르고 다른 자들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며 지내는 망각의 지옥일까. 배 위에서 길 위에서 물속에서 시장에서 시끌벅적 산자의 행세를 흉내 내며 지내지만 실제론 어떤 생명의 흔적도 남아있지 않은 폐허와 무덤만이 가득한 곳은 아닐까. 이미 죽은 자들이 더 먼저 죽은 자들을 그리워하며 눈물 흘리는 연옥은 아닐까. 아무리 많이 자주 모여도 즐거움이 없고 눈만 마주치면 서로의 눈알을 뽑을 것처럼 혈투를 벌이고 사랑과 연민을 미끼로 거액을 뜯어 내려하고 어미 없는 아이들이 아이를 낳고 자식 잃은 노모가 다시 자식을 잃고 어미를 향해 평생 복수하려던 자식이 어미의 죽음으로 되려 복수를 당하고 어린 날의 우정을 미끼로 다 늙은 친구를 조롱하고 아이는 세상에 혼자 남아 엉엉 우는 이 모든 고통과 슬픔이 하루를 멀다 하고 펼쳐지는 그러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서로 엉켜서 씨름하고 닭싸움하고 노래방 가는 여기가 정녕 중력의 영향이 미치는 곳인가. 현실의 고통과 슬픔을 비현실적인 용서와 화해로 뭉개고 능청맞게 웃는 건 라스 폰 트리에 영화들처럼 갱단이 쳐들어와서 모조리 쏴 죽이거나 운석을 떨어뜨려 우주에서 증발시킬 수 없으니까 그런 걸까. 어느 날 바다가 범람하여 섬 위의 모든 생명체를 집어삼키거나 내리쬐는 태양광선에 가연성 맹독이 섞여 모두의 옷과 피부에 불이 붙었다고 하면 어땠을까. 해가 뜨고 파도가 스멀거릴 때마다 연기와 비명소리가 그치지 않는다고. 절망과 피울음에 절여진 섬 위에 희망은 그림자조차 드나들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