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구아다니노 감독. 위 아 후 위 아
우리는 착각한다. 경험은 성장이라고. 아니다. 우리는 착각한다. 고통과 슬픔은 성장이라고. 아니다. 처음 겪는 인식과 자각이 뒤섞이며 폭발하는 10대 시기. 인간들은 설명하기 편하게 10살 단위로 인생을 나눴고 그 덕에 10대 시기는 일정한 지위를 부여받았지만 다른 시기에 비하면 결코 유리하지 않다. 사방이 벽이고 승인을 받지 않으면 영역을 구분 짓는 문을 통과할 수 없으며 거의 모든 행동과 판단에 연장자의 허가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거쳐야만 부상과 죽음의 위험 없이 생존할 수 있다는 선험적 믿음에 세뇌되고 갇혀 있다. 나중에 이 시기에 알게 된 것들 중 상당수가 틀렸다는 각성이 오지만 이미 늦었다. 키우기 쉽고 다뤄지기 쉽게 길들여지고 길들여지다가 남아있는 저항의 에너지로 새로운 문제들과 겨우 맞설 수 있을 뿐이다. 기존 세대의 지식과 정보를 추앙하는 건 기존 세대를 받아들이기로 합의한 이들뿐이다. 문제는 이들이 시스템을 컨트롤하고 전체의 동선을 장악할 수 있는 권력을 쥐었다는 점이다. 10대는 이 존재와 끊임없이 충돌하며 자신의 크기를 실험하는 시기다. 이탈리아 내 미군부대라는 공간적 배경은 이런 관점에서 다양한 이해를 돕는다. 이곳의 군인들은 문명사회 수호와 시민의 안전, 국토방위 등 뭐든 이유를 대며 엄격한 규율과 훈련 속으로 모든 생을 욱여넣기로 한 이들이다. 지위에 따른 임무 수행에 존재 이유가 있다. 이 군인들의 10대 자녀들이 위 아 후 위 아의 생명체이자 주인공들이며 불안과 공포의 우주이자 걷잡을 수 없는 들불, 모든 것을 삼켜버릴 파도, 범죄와 죽음, 마약과 섹스, 광기와 키스, 전쟁의 희생자, 휴대폰과 눈물로 연결된 독립체들이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새로운 용광로에 예리하게 선별한 재료들을 녹여 넣는다. 고요한 밤 엄마의 뺨을 후려 갈기는 소년, 아빠와 이웃에게 총기 사용법과 범죄를 배우는 소녀, 파병 나갔다가 폭탄에 산산조각 난 친구, 레즈비언 군인 부부, 동성이성 친구들과의 끝없는 키스, 타고난 성별을 바꾸고자 하는 욕망, 자기 존재에 대한 혐오, 가장 가까운 이에게 사랑받지 못한다는 절망, 자녀에게 과거를 숨기는 부모, 조용히 트럼프를 지지하는 군인, 유튜브로 신과 만나는 과정, 여성 혐오라는 보편적인 야만, 함께 타락하는 밤, 결혼이라는 죽음의 의식, 교훈 없는 경험, 인간의 사고를 완전히 뒤집는 상실감, 아내를 강간하는 남편, 화해를 강요하는 성관계, 아이 없는 여성이 대한 아이 있는 여성들의 무시와 박해, 행복할리 없는 사람들, 행복한 척하는 사람들, 자유로운 선택의 필연적 대가를 늘 치르는 사람들, 끝날 리 없는 여행, 인간 없던 자연 위에 인간이 세운 길, 건물, 벽과 철조망, 처음부터 보이지 않았던 길. 지금도 앞으로도. 하지만 같이 가고 싶은 사람, 포기하고 싶지 않은 자신, 이해받고 싶은 욕망... 10대엔 알고 싶은 데 너무 이르거나 알고 있어야 하는 데 너무 무지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아무 능력도 없는데 아무 간섭도 받기 싫고 크게 달라질 게 없는데 뭔가 달라질 거라는 희망을 학습한다. 기어이 그 멀고 복잡한 호흡 속에서 전력질주하다가 체념에 이르는 시기. 프레이저(잭 딜런 그레이저), 케이틀린(조단 크리스틴 시몬), 브릿(프란체스카 스콜세지), 대니(스펜스 무어 2세) 등은 모두의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