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라이자 히트먼 감독.전혀 아니다,별로 아니다,가끔 그렇다,항상 그렇다
임신은 죄가 아니지만 모든 여고생들이 흔히 겪는 일도 아니다. 오텀(시드니 플래니건)은 노래를 잘 부르는 학생이었다. 몸의 변화를 느꼈고 테스트 결과 선명한 두 줄이었다. 짐작했지만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뒤에서 시시덕거리는 모자란 수컷 새끼들 사이에서 모든 책임이 오텀에게 지워져 있었다. 오텀의 동네는 작았다. 오텀의 가정은 평범하고 어색하고 엉망이었다. 가족 중에 성인 남자는 오텀을 끊임없이 비하했다. 마치 성인 여자 앞에서 순위를 빼앗기고 싶지 않다는 듯이. 오텀은 마트 계산대에서 일해야 했다. 몸과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혼란스러워졌다. 임신 중단 수술을 하는 병원을 찾았다. 두 곳의 말이 많이 달랐다. 10주와 18주. 오텀은 같이 일하는 친구와 뉴욕의 병원을 찾는다. 돈과 시간, 머물 곳이 필요했다. 버스에 오르고 도착하고 검진을 받는다. 오텀의 결정을 재확인하는 질문들, 내내 무표정하던 오텀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전혀 아니다, 별로 아니다, 가끔 그렇다, 항상 그렇다. 과거 이성과 관계 시 폭력성 여부를 묻는 질문이 오텀을 어쩔 줄 모르게 만든다. 그 질문 앞에서 오텀은 숨을 곳이 없었다. 상담사는 더 묻지 않는다. 수술을 받는 오텀 곁에서 손을 잡아준다.
오텀은 마취에서 깨어난다. 오텀의 몸은 만신창이였다. 마음은 더더욱 그랬다. 동행한 친구 스카일라(탈리아 라이더)가 짐을 들어준다. 오텀의 상태를 살핀다. 머리를 풀러 즉석에서 심심한 마술을 보여주며 웃음을 유도하기도 한다. 스카일라는 오텀을 떠나지 않는다. 멀고 떠나와 돈 없어 춥고 배고픈 낯선 뉴욕에서 스카일라는 불안에 떠는 오텀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그리 맘에 들지 않는 남자와 데이트를 하며 겨우 버스비를 빌린다. 스카일라가 없었다면 오텀은 죽음 직전까지 갔을지도 모른다. 스카일라의 희생을 오텀도 알고 있었다. 다만 고맙다고 인사할 힘이 없었을 뿐. 종일 피로감이 온몸을 뒤덮고 있었다. 빨리 뉴욕을 떠나고 싶었다. 임신 중단 수술을 겪은 도시를 떠나고 싶었다. 지하철에 변태 새끼가 있는 여기서 도망치고 싶었다. 엄마에게, 그지 같아도 그래도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버스에 겨우 오르고 잠이 솜이불처럼 뒤덮이고 있었다. 이대로 모든 걸 멈추고 싶었다. 집으로 향하는 버스만 빼고 어떤 무엇에게도 침묵과 고립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수많은 장면들이 오텀의 표정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극단과 극단이 아닌 닥친 상황 안에서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동력을 그만 놓아버린 모습이 시종일관 읽혔다. 덤덤해 보였지만 내면에선 화염의 토네이도가 세포와 혈관들을 불태우고 있었겠지. 분노가 고요히 쌓이다 보면 소리 내어 내 감정을 분출하는 게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체득하게 된다. 오텀은 수없이 자문하는 듯했다. 내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지. 아무도 답을 해줄 수 없었다. 다만, 그래 난 이 아이를 낳아서 기르며 나와 같은 삶을 살게 하지 않겠어! 같은 정면돌파 식의 무모함을 선택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건 정말 넷플릭스 하이틴 코미디 소재로나 가능한 일이었다. 오텀의 현실은 비루하고 누추하며 한없이 피곤했다. 세상 어떤 일이라도 반응이라는 걸 하는 것에 완전히 지친 표정이었다. 그런 오텀에게 뉴욕은 그저 수술 가능한 병원이 있는 곳 이상도 이하도 될 수 없었다. 오텀은 겨우 덤덤한 척 현재를 살고 있었다. 과거를 수습하며. 누굴 탓하는 것조차 소용없다는 걸 너무 일찍 알아버린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