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련 극본. 김성호 감독.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
죽은 사람은 방이 필요 없어
사람은 죽는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죽는다. 누군가는 스스로 선택한 방식으로 죽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다. 병에 걸리고 사고를 당하고 누군가에게 살해당하기도 한다. 죽음에 대해 언급하는 건 조심스럽다. 풍문과 환상이 아닌 실제이며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으며 반드시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공포와 두려움, 불가항력의 성격 때문인지 인간의 죽음은 늘 일정 부분 진지한 대우를 받아왔다. 선을 넘는 스탠딩 코미디에서도 죽음이란 소재는 비교적 신중히 다뤄진다. 역사, 문화, 상황 등 수많은 맥락이 있고 과정이 있고 사연이 있다. 단순히 '끝'이라는 한마디로는 죽음에 대해 아무것도 파악할 수 없다. 장례식은 죽음을 다루는 인간 문명의 중요한 과정 중 하나, 죽은 자가 담긴 관을 배에 싣고 강에 띄운 후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기 전 불화살을 쏘아 올려 적중시켜 화장하던 HBO 미드 왕좌의 게임의 한장면이 강렬하게 남아있다. 무브 투 헤븐: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이하 무브 투 헤븐)은 인간의 죽음을 이사로 해석한다. 죽은 자 모두가 헤븐에 다다를지 알 수 없지만 고인의 흔적을 정리하는 유품정리사들 입장에서 죽음과 남겨진 세계는 엄숙하고 평온한 의식처럼 다뤄진다. 그리고 떠난 이들의 이유는 대부분 지금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현실에 발을 딛고 사는 이들이라면 선이 닿지 않을 수가 없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서투르고 서툰 방식으로 삶의 모든 과정을 다룬다. 서툰 방식으로 자신과 타인의 삶에 개입한다. 연대하고 유대하며 서로 부족한 면을 채우기도 하지만 적대하고 대립하며 서로를 해치기도 한다. 빼앗아야만 내 자리가 생긴다는 방식으로 숨이 붙어 있는 내내 싸우기도 한다. 유품정리사는 이 모든 혼돈의 문이 닫힌 후에 입장한다. 마른 핏자국과 마르지 않은 체액을 닦고 먼지를 털고 묵은 공간을 환기시킨다. 죽은 자는 방이 없다. 아무리 닦고 털어낸들 망자는 재입장하지 못한다. 유품정리 의뢰인과 유품정리사들 간의 합의다. 망자의 공간에서 망자의 흔적을 지운다. 흔적의 일부를 유족 및 망자의 지인들에게 전달한다. 무브 투 헤븐에 소속된 정우(지진희), 그루(탕준상), 나무(홍승희), 상구(이제훈)는 유족과 망자 사이를 오가며 기억과 감정을 매듭지어주는 역할을 한다. 절차와 방식이 있고 변수를 처리하기도 한다. 그들 중 일부는 망자가 되고 일부는 유족이 되기도 한다. 가장 무너지는 건 유족이겠지만 그보다 먼저 고통받았던 건 망자였다. 무브 투 헤븐은 죽음에 이르는 슬픔과 고통의 과정에 집중한다. 생과 사는 하나의 선 위에 놓여 있지만 기울기와 질감은 각기 달랐다. 그 다름이 각각의 슬픔과 고통을 독립적 개체로 차별화시킨다. 같은 표정으로 울고 있어도 다른 모양으로 가슴이 찢어지고 있었다.
각각의 모든 사연엔 그렇게 죽지 않아도 될 연유가 함께 녹아 있었지만 가장 진동이 컸던 건 스무 살 공장 근로자의 죽음이었다. 공장, 기계, 고시원, 혼자 겪는 고통, 절뚝거리는 퇴근길 등 그가 겪었던 모든 공간과 경험 속에 내가 겪었던 공간과 경험도 일부 겹쳐 있었다. 좁은 방, 아무도 돌보지 않는 밤, 그는 고통 속에 죽어야 했고 나는 이렇게 살아있었다. 같지만 완전히 달랐다. 그리고 그처럼 외마디 소리 없이 죽는 일은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현실의 죽음을 막을 도리가 없다. 알지만 행하지 않고 죽을지도 모르지만 살기 위해 여전히 맹렬히 돌아가는 육중한 기계 앞에서 안에서 밑에서 일해야 한다. 기계는 인간의 근력으로 멈출 수 있게 설계되지 않았다. 관리되지 않는 기계 속에서 인간의 피부, 근육, 뼈는 견디지 못한다. 야근 중 공장 기계에 중상을 입은 스무 살 노동자는 영영 눈 뜨지 못한다. 유품정리사들은 그가 없는 쓸쓸한 빈방에서 주인이 사라진 물건을 상자에 담으며 그의 삶을 유추할 뿐이다. 죽을 때까지 오열을 멈추지 못할 유족들에게 예를 갖추며. 굳이 희망을 애써 끄집어내 포장하며 이야기하지 않아 계속 지켜볼 수 있었다. 기억하는 한 곁에 있다는 여운을 띄우긴 하지만 죽은 자들에게 희망은 아무 소용없다. 희망 운운이야 말로 사자와 산자의 선을 긋는 일일 것이다. 유품정리사들은 철저히 산자(의뢰인)를 위해 기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