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함없는 자들의 마을, 대충 불행한 중년의 삶

니콜 홀로프세너 감독. 변함없는 자들의 마을

by 백승권

노력은 노력할 여력이 있는 자들에게나 허용되는 선택지다. 살다 보면 메마른 우물가에서 신에게 아무리 빌어도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날이 온다. 노력이라고 여기던 것들을 한없이 쏟아붓다보면 일정 순간에 멍해진다. 나 왜 이러고 있을까. 뭘 그렇게 대단한 업적을 남긴다고 계산기를 두드리고 상사에게 아부하고 클라이언트 눈치를 보고 가족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사랑한다 고백하며 결혼한 사람과 무감해지고 자식과 멀어지고 누구와도 가깝지 않고 어떤 목적도 세우지 않으며 겨우 걷고 숨 쉴 뿐 다른 시도에 대한 욕구는 전혀 일어나지 않는 상황, 원하는 게 있는지도 모르겠고 있다고 한들 방법조차 딱히 떠오르지 않는 날, 감정, 기운, 기분... 엔더스(벤 멘델존)에겐 온몸으로 닥치고 있었다. 금융계를 조금 이른 시기에 은퇴하고 이혼한 아내와 다 자란 자식이 있는 작은 동네로 돌아온다. 아무도 반기지 않는다.


그는 악마가 빚은 생명체가 아닌데, 주변 대다수가 꺼려한다. 아내 헬렌(이디 팰코)부터 아내의 새 남편(빌 캠프), 아들까지 예상치 못한 그의 등장을 어색해한다. 아들 프레스톤(토머스 맨)은 한때 약물 중독으로 재활원에 다녀왔었다. 최근엔 엄마가 운영하는 곳에서 언어를 배우러 온 사람에게 불법으로 돈을 받아 도박을 했다. 그저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그저 그런 동네에서 그저 그런 부모 밑에서 그저 그렇게 살다가 그저 그렇게 나이를 먹은 20대 남성. 오랜만에 아빠를 봤지만 그저 그렇다. 엄마와의 사이를 알기 때문에. 할 말도 없고 같이 하고 싶은 것도 없다. 엔더스는 아들과 거리를 좁히고 싶지만 방법을 모른다. 노력할 줄도 모른다. 모른다. 엔더스는 이웃의 아들 찰리(찰리 타핸)와 홈파티에서 같이 약을 한다. 찰리는 곧 재활원에 들어가야 했다. 엔더스와 찰리는 대화를 한다. 이 동네에서 찰리와 이런 대화를 나눈 사람은 없었다.


찰리는 자신이 쓰는 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간이 우주 개발 경쟁을 위해 우주로 보내 죽인 개에 대한 실제 이야기, 여기에 비하인드 스토리를 상상력을 더해 새롭게 구상한다. 수회에 걸쳐 엔더스와 이야기를 나누며 찰리는 눈물짓는다. 자신이 우주로 보내져 홀로 죽은 개인지, 그런 개를 그리워하는 인간인지 아무도 모른다. 확실해 보이는 건 찰리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는 점이다. 마침 엔더스가 들어주고 있었다. 떠나며 엔더스에게 소중한 거북이를 맡길 수 있었다. 재활원엔 가기 싫었다. 찰리는 엔더스 곁에서 인사 없이 사라지며 불꽃을 쏘아 올린다. 불꽃은 어두운 하늘에서 힘없이 소멸된다. 찰리는 다음 날 숲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프레스톤은 아빠 엔더스가 가여웠다. 자신은 안정적인 지위를 갖춘 친구 집에 배달을 다니는 처지긴 하지만 아빠를 성탄절 저녁식사에 초대하고 싶었다. 그렇게 프레스톤과 엔더스, 엔더스의 전부인 부부와 찰리의 부모들이 저녁을 나눈다. 이혼과 재혼, 약물과 재활원, 자식의 죽음이 침묵 속에 뒤엉킨 식탁, 고요히 지나갈 리 없었다. 드라마틱한 감동 대신 고성과 싸움만 있었다. 모두가 각자의 불행을 품고 있었고 그럭저럭 지내다가 짜증내고 화내고 그러다 말고 있었다. 부모는 부모대로 불행했고 자식은 자식대로 제대로 풀리는 게 없었다. 한결같았다. 변할리 없었다. 아무도 변하지 않으니까. 여기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동네가 이럴 것이다. 대부분의 부부와 자식이 이럴 것이다. 하지만 노력하지 않는다. 노력하는 법을 몰라서.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충 모여서 대충 불행하게 산다.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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