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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Jun 01. 2021

크리스마스에는 행복이, 초대받지 못한 레즈비언

클리어 듀발 감독. 크리스마스에는 행복이






정상 가족만큼 비정상처럼 들리는 단어도 없다. 드라마 주인공의 해피엔딩 장면을 보통 인생으로 착각하는 정도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감독은 밝힌다. 이건 결국 크리스마스 영화가 될 거라고. 롤러코스터를 태워줄 수는 있겠지만 결국 안도하는 결말로 도착한다는 스포일러 같았다. 하지만 성탄절 시즌 사랑과 가족을 다루는 모든 영화가 러브 액추얼리나 어바웃 타임처럼 될 순 없으니까. 영화는 비극의 조짐을 켜켜이 쌓아두고 단숨에 터뜨린다. 딱 거기가 가장 현실 같았다. 정상 가족, 정상 사랑, 정상 인생을 꿈꾸는 이들의 두려움이 응축되어 있었다. 현실의 가족은 비밀을 끌어안고 입을 틀어막은 채 무덤까지 들어가지만 영화는 참지 않는다. 예쁜 트리를 거대하게 만든 후 불을 붙인다. 활활 타오른다. 온 가족의 비명 소리와 함께.


하퍼(맥켄지 데이비스)가 애인 애비(크리스틴 스튜어트)를 성탄절 가족 모임에 초대한다. 하퍼는 끼인 사람, 정상 가족의 착한 딸과 레즈비언 사이에서 오랫동안 분열되고 있었다. 한쪽으로 기울어야 레즈비언 부부가 되든 정치인 아빠의 자랑스러운 딸이든 제 역할을 할 텐데 어디 삶이 그런가. 무작정 애비를 태우고 집으로 달린다. 애비는 청혼하고 싶었다. 하퍼 가족의 온갖 혐오와 마주하기 전까지. 하퍼 엄마부터 조카까지, 현실에서는 정상의 껍데기를 입은 것처럼 보이겠지만 손님이자 레즈비언인 애비에게는 이런 악마들도 없었다. 애비는 난타당하고 정신적 그로기 상태에 빠진다. 거기에 하퍼까지 남자애와 히히덕거리고 있었다. 애비의 구원자는 하나였다. 단숨에 날아온 친구 존(댄 레비) 밖에.


정상 가족을 흉내 낸 인간들의 우주가 파멸하고 있었다. 평생 쓴 가면, 평생 떠든 거짓말, 사랑받기 위한 혈족과의 경쟁, 행복한 척, 괜찮은 척, 즐거운 척, 척척척 쌓아온 마법의 성이 모든 구성원의 대환장 폭로 파티와 함께 붕괴하고 있었다. 애비는 이 지옥 속에서 배신당한 약자였다. 정체성과 사랑 모든 걸,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부정당한다. 애비가 조커로 변해 피의 복수를 하거나 하퍼의 집과 구성원을 불태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익숙한 판타지를 기대하는 대다수를 위한) 크리스마스 영화였다. 애비는 아무도 해치지 않는다. 상처 받은 자가 되어 낯선 동네를 떠났을 뿐이다. 반전이 있든 없든 키스와 눈물을 보여준다.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무성애자든 흑인이든 백인이든 별거 중이든 아니든, 크리스마스니까. 인스타그램에 #행복하다고 사진 업로드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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