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 불행은 디테일하다

데이비즈 O. 러셀 감독. 조이

by 백승권



불행은 디테일하다.


한두 가지 상황과 징후로 불행은 정의되지 않는다.

단순하다면, 해결할 가능성이 크고 다시 말해

그것은 곧 해결할 가능성이 큰 불행이므로

불행의 조건에 들지 못한다.

몇 번 일이 안 풀려 신세한탄이야

누구나 할 수 있겠지만

불행은 생각보다 까다롭다.

불행=현재 행복한 일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정도가 아니다.

불행은 온갖 불행한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고,

이것에 대한 대비책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예측 불가능한 것이며,

잠시 행복했을 적의 내 편에 서 있던 이들이

모두 등을 돌리고 내가 하루빨리 더

불행해져 끝장나기를 기다리는 광경을

경련을 일으키며 지켜보는 일이다.

불행은 흔한 말이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지만,

아무나 극복할 수 없는 일이다.

친구, 의리, 돈, 타이밍, 운, 판단력 등

불행이 닥쳤을 때만큼이나 저런 것들이

한 번에 융합되어 발휘되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불행은 평등할지 몰라도

불행을 헤쳐나가는 기회는,

이를 휘어잡는 능력은 그렇지 못하다.

개인의 능력과 하등 관계가 없을지도 모른다.

불행한 경험은 모두가 떠들지만

이를 극복한 후일담은 드문 이유다.

불행 극복기는 불행의 시절을 다시

떠오르게 한다는 점에서도

쓴웃음을 자아내게 하지만

불행을 극복했음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나

현재의 사회적 지위 등이 있지 않으면

허풍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결국 '나는 과거 불행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으며,

이를 입증할 수 있다'는 이야깃거리가 된다.

불행을 극복하지 못한 사람들이

원했던 결말이기 때문에.

대리만족할만한 소재가 된다.


조이(제니퍼 로렌스)의 불행이 그러했다.


고교 수석 졸업생이었지만,

첫눈에 반한 남자와 사랑에 빠졌지만

만인 앞에서 아빠의 저주를 받으며 결혼했고

엄마는 이혼 후 평생 침대에 틀어박혀

드라마에 빠져 살았으며

덕분에 살림은 몽땅 조이 몫이었다.

청소 빨래 수리 육아 요리 모두 모두

아빠의 첫째 부인 딸은 사사건건 훼방이었고

기발한 생활용품 디자인을 고안했지만

알아봐 주는 어른이 주변에 전무해 기회를 놓쳤다.

그렇게 이혼하며 홀로 딸을 키우며

피로와 절망에 둘러싸여 나이 들어가고 있었다.

이름과는 반대로.

맨날 닦고 치우고 하녀보다 못한 삶 속에

섬광 같은 아이디어가 지나간다.

조악한 실력으로 아이의 스케치북에

드로잉을 시작하고

그렇게 손대지 않아도 짜서 쓸 수 있는

흡수력 좋은 밀대 걸레가 탄생하고 있었다.

가능성이 보이니 개미가 모여든다.

이익이라면 너도 나도 덤벼드는

가족이라는 개미 떼들.

꿀 빨 생각에 눈들이 반짝인다.

하지만 조이에게 비즈니스란

남들이 말하는 하지 말아야 할 것 중에 하나였다.

안돼라는 말이 수백수천 번 따라다닌다.

기존의 문제를 해결한 밀대걸레=대박상품

이라는 공식은 애초부터 없었다.

공장을 운영하는 아빠는 새 부인과 함께

조언을 덧붙이지만

이건 마치 처세서에 쓰여있는

안 봐도 그만인 내용 같다.

이제는 친구 사이처럼 된

조이의 전 남편이 지인과 연결해준다.

비웃음을 당하며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팀장의 촉에 걸려 수만 개를 생산해

홈쇼핑으로 팔기로 한다.


그렇게 망한다.


단 한 개도 팔리지 않는다.

조이는 채무에 시달리고 있었다.

더 망하면 죽더라도 갚을 수 없는 빚더미였다.

직접 나서기로 한다.

덜덜 떨며 밀대 걸레를 소개한다.

삶이 묻어나고 있었다.

친구가 돕고 있었다.

할머니가 응원하고 있었다.

거짓말처럼, 영화처럼, 꾸며낸 이야기처럼,

새로운 걸레는 순식간에 수만 개가 팔린다.

그렇게 해피엔딩... 일리 없다.

조이가 이제 막 발을 들인

비즈니스란 세계가 그랬다.

성공하면 훔치려고 난리였다.

부품을 공급하는 파트너사가 도둑이었다.

계속 망하기만 했던 조이의 인생은

잠시 햇빛을 보려다가 다시 폭망하기 직전이었다.

이익을 나누려던 가족은 다시 적이 되어

상황을 더욱더 지옥으로 몰고 간다.

어떤 악마도 이들보다 더

시련을 배가시킬 것 같지는 않을 것처럼

가족이라는 인간들은 조이를 더 고립시키고

조이를 더 힘들게 하며 그렇게

조이를 오직 홀로 설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 만든다.

마치 조이를 불쌍하게 여겨

신이 내려준 듯한 할머니도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부재한 상황.

붕괴되기 직전.


조이는 늘 그래왔듯 이번에도 승부를 건다.


극화된 타인의 고통을 지켜보는 일에 대한

멈출 수 없는 쾌감 때문에

영화는 계속 만들어지고,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는 계속 찾아지게 된다.

엔딩만 해피하다고 해서 동의하기 힘든 삶.

엔딩만 보려고 사는 게 아닌데, 사람들은

그래서 어떻게 됐어? 망했어?

자살했어? 대박 났어? 결과에 목을 맨다.

자신이 끝까지 가보지 못한 결과에 대해

한없이 갈증을 느낀다.

조이의 자수성가형 삶은

한 줄로 요약될 수도 있었다.

죽도록 고생했다가 결국엔 성공한

어느 사업가 이야기.

계모와 새언니에게 시달리다 왕자를 만난

신데렐라와 다르지 않다.

다르다면 신데렐라는 왕자 아이템을 얻었고

조이는 밀대 걸레를 직접 팔았다는 점이다.

동화와 실화.


말로 전해지는 성공실화 속에는

행간에 숨겨진 것들이 더 많다.

불편한 것들은 제거되고 말끔한

편집본만 전해지고 전해진다.

누구나 조이처럼 태어나지 않고

조이 같은 가족과 살지 않으며

조이 같은 아이디어를 그릴 수 없고

조이같이 직접 나서서 상품을 팔 수는 없다.

그저 듣고 보며 대리만족하고 싶을 뿐이다.

돈을 많이 벌었겠지. 얼마나 좋을까 하며.

조이 같은 삶을 살고 싶지 않다.

조이 같은 불행을 겪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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