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메시 옐레시 라슬로 감독. 사울의 아들
셀 수 없는 사람들이 몰려 들어온다.
지치고 두려운 표정,
노인, 청년, 아이, 엄마.
집단 샤워를 할 테니
옷을 벗으라는 명령이 들려온다.
옷이 벽에 걸리고
샤워실로 몰려 들어간다
동시에 다른 인원들이 벗어놓은 옷들을
신속하게 수거한다.
그리고 샤워실 문 앞에서 대기한다.
소리
비명
문이 열린다.
아무도 없다.
모두 죽었으니까
벌겨 벗겨진 채 널브러진 시신들.
치운다. 쌓는다. 옮긴다.
바닥에 핏물을 씻는다.
다음 인원들이 들어와야 하니까.
샤워실에서 화학가스로 독살된
시체들은 옮겨져 소각된다.
시체 처리를 담당한 인원들도 머잖아 마찬가지 운명.
그들 중 한 명의 시선이 고정된다.
마른 남자아이의 시신.
아들
사울은 그 남자아이를 아들로 알고 있다.
장례를 치러주기로 한다.
가능할 리 없다.
몇 개의 총구 앞에서
포로가 포로를 몰아넣고
포로가 포로를 독살하며
포로가 포로의 시체를 치우는 시스템 안에서
개인행동은 용납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울은 포기하지 않는다.
죽을 자들이 죽은 자들을 소각하는
지옥보다 더 지옥 같은 수용소 안에서
사울은 아들에게 랍비를 통한
간략한 기도라도 한 후
아들을 매장하고 싶어 한다.
모두가 말린다.
죽은 자 한 명에게 예우를 갖추다
모두가 총알받이가 되거나
모두가 화학가스를 마시고 비명에 죽을 수 있었다.
사울은 단호했다.
수용소 탈출 계획의 일부를 담당했으면서도
아들의 장례를 맡아줄 랍비를 찾는데 여념이 없었다.
언제든 죽을 수 있었고
모든 움직임이 아슬아슬했다.
그리고 찾는다.
그 사이
밀물과 썰물처럼
밀려오는 포로들과
쌓여가는 시신들
태워지는 시신들
총알 받이가 되는 포로들
처음부터 통제되는 게 신기할 정도로
기형적인 수용소는
점점 걷잡을 수 없는 아노미 상태로 치닫는다.
모두가 모두를 공격하고
모두가 모두를 죽이려 하며
모두가 모두에게서 탈출하려 한다.
사울은 자신을 랍비라고 주장하는
한 남자와 함께 한다.
아들의 시신을 안고 있는
순간순간이 목숨을 건 움직임이었다.
너에겐 아들이 없고, 그건 네 아들이 아니야라는
지인의 독설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계획은 틀어지고 공간과 시간의 구분이
무의미해지고 있었다.
어차피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었던 곳.
숲을 지나고 강을 건넌다
강을 건너다 물이 숨구멍을 덮치고
물은 숨을 막고 사울은 헐떡이고
아들의 시신은 저 멀리 떠나간다.
사울은 잡을 수 없었다.
잡으려 할수록 시신은 멀어지고 있었다.
랍비라 거짓말한 남자는 도망간 후였다.
사울은 아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
아들인지 아닌지 모르는 소년에게
살아있을 때도 죽었을 때조차 어떤 대우도
제대로 해줄 수 없었다.
그의 체력과 정신이 다할 때까지
아들의 장례를 위해 매달렸건만
시체는 멀어지고 장례는 소용없어졌다.
인간에 대한
인간의 최소한의 예우를 갖추는 과정이
극한의 상황에서
사울이 자신에게 허용할 수 있는
마지막 의식 같았다.
포기하지 않았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상황.
사울은 오래전부터 죽어 있었다.
산자의 껍질을 두른 채 걷고 말하고 있었지만
사울은, 사울을 비롯한 그곳의 거의 모든 이들은
어떤 인간보다도 인간 같지 않았다.
그곳에서 사울은 어려운 길을 선택했고
끝까지 밀고 나가려 했다.
시도를 통해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나는 여기까지 인간다워지고 싶어라고
호소하는 듯했다.
아들의 주검을 바라보는 장면은
자신의 주검을 바라보는 것 같았고
아들의 주검을 옮기는 장면 또한
자신의 삶을 옮기려 애쓰는 것 같았다.
그런 행위들 자체가 이미
상황이 주는 모든 압박을 초월하고 있었다.
사울이 웃었을 때
조금 떨어진 곳에는 어떤 소년이 서 있었다.
아들과 다른 외모였지만 비슷한 나이였고
사울은 마치 아들의 부활을 본 듯 환한 곡선을 그린다.
뺨까지 깊이 파고드는 미소.
소년은 사라지고
나치는 들이닥친다
빗발치는 총성
사울은 누구도 살리지 못 했다.
스스로 죽지도 못 했다.
하지만 사울에겐 아들이 있었다.
모두가 죽지 않으려고 만 했을 때
죽어서라도 지키려 했던 생명.
나치를 창설한 히틀러의 명령 아래
600만 유대인을 학살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대한 기록 중
가장 경악했던 부분은
유대인에 의해 유대인들의 죽음을
이끌었다는 부분이었다.
죽은 이도
죽음의 장소로 직접 이끌어 간 것도
모두 유대인이었다.
나치는 그렇게 자신들의 새로운 제국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산 자보다 죽은 자가 더 많은 장소였다.
어떤 도살장도 이보다 더 많은
죽음이 쌓여 있지는 않을 것만 같았다.
그곳에서 의무적으로 죽이고 이유도 모른 채 죽어야 했다.
사울은 특별난 게 없었다.
시체 처리자들 중 하나였다.
자신이 처리한 유대인 중 아들이 있었고
어떤 선택을 했다.
그건 아들로 상징된
자신의 장례였다.
그는 그때부터 적극적으로
인간다운 장례의식을 위해 안간힘을 쓴다.
아들이 아니었을지도
처음부터 없었을지도 모른다.
사울은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사울을 돕는 이들은 없었다.
그는 고생을 자처했고
모든 시도가 실패했다.
그렇게 웃으며 죽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