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민 바흐러니 감독. 라스트 홈
빼앗긴 자가 빼앗는다.
빼앗겨 본 적 있어서
빼앗기는 자들의 심정을
더 잘 이해할 것 같지만
그런 이해는 빼앗기는 자들을
돌보는 데 활용되지 않는다.
다시는 빼앗기는 자가 되지 않기 위해
더 단호하고 악랄하게 빼앗게 된다.
빼앗기는 자는 약한 자이지
선한 자가 아니다. 하지만
빼앗는 자는 강한 자이자
악한 자가 될 수 있다.
힘이 없다고 호소한다고 하여
세상의 어떤 장치도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이들 중 일부는 아주 오랫동안 빼앗긴 후
빼앗는 법을 습득한다.
자신의 세계 안에서
빼앗는 것만이 빼앗기지 않는 방법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절감하고 실행한다.
두려움과 공포를 각인시키는 이런 경험은
세계관을 바꾸고 이전까지의 태도를 뒤집는다.
자신과 자신의 소중한 이들에게
두 번 다시 비극을 겪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는
타인과 타인의 소중한 이들의 비극에서
고개를 돌리도록 한다.
일부러 보지 않는다.
그렇게,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다.
비인간적이라 여겼던 말과 행동을 하게 된다.
평생 살던 집을 빼앗겨 울부짖던 이가 타인과 그 가족들이
평생 살던 집을 빼앗아 울부짖게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다시 빼앗기는 자가 될까 봐
감정을 거세하고 외운 말을 들려준다.
나가세요. 더 이상 당신의 집이 아닙니다.
법원이 결정한 사항입니다. 어기면 위법입니다.
고성이 오가고 주변은 아수라장이 되며
인부들이 들이닥쳐 보금자리를 폐허로 만든다.
은행, 정부, 언론이 만든 현세의 지옥.
지옥을 겪었던 자들이 앞잡이가 되어 다시
지옥을 확장하며 돈을 번다.
텅 빈 집은 돈이 되어 다시 팔린다.
쫓겨난 자들은 여관방을 전전한다.
세기말은 픽션이 아니다.
저런 사태 앞에서는 마블 히어로들은 아무 쓸모가 없다.
공권력은 자본 앞에 서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아빠, 엄마, 아들, 딸, 할머니, 할아버지, 이웃을
홈리스로 만든 대가로
소수는 화려한 수영장이 있는 고급 저택에서
밤새도록 시가를 피우며 샴페인 파티를 벌인다.
부동산 업자 릭 카버(마이클 섀넌)는
대니스(앤드류 가필드)에게 말한다.
(우리가 거주자들을 내쫓으며 빼앗는 집들을)
그냥 상자라고 생각하라고.
큰 상자 작은 상자가 있고
그걸 모으는 사람이라고.
감정을, 배제하라고.
오래전부터 세상은
소수의 계획에 의해 시스템이 붕괴될 경우
서로를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 룰에 의해 돌아가긴 했다.
다수의 생존을 위해
남의 영토를 빼앗고 그 이전
거주자들을 몰살하던 시대와
전혀 다를 게 없다.
갑옷 대신 슈트를 걸쳤을 뿐.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지만,
가해자로 입장이 바뀐 모두가
주인공처럼 무너지는 양심을 견디지 못해
극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의 악행을 감당할 수 있는 자가
기꺼이 악마가 될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하루아침에 이웃을 집에서 내쫓아
어쩔 줄 몰라 울부짖게 만드는 광경의 중앙에 서서
나는 정녕 악마인가...라고 여기면 매번 힘들겠지만
먹고살기 위해서, 나의 소중한 엄마와 아이를 지키기 위해
다 어쩔 수 없는 거 아니겠냐고 합리화하면 편하다.
지옥은 그렇게 유지된다.
자신은 악마가 아니라고 읊조리는
합리화에 익숙해진 인간에 의해서.
생존 앞에서 양심은 늘 성가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