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격, 죽음과 죽음 사이에서 만난 사람들

허진호 감독. JTBC 인간실격

by 백승권

어른 인간에 대해 소개할 때는 흔히 직업을 먼저 말하게 된다. 마치 그 사람이 하는 일이 그 사람의 핵심이자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거대한 합의가 이뤄진 것 같다.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게 젤 빠르고 편하니까. 당신이 누군지에 대해 구구절절 들을 여유가 다들 없다. 아 이런 일 하시는 분이구나. 아는 일이면 꼬리를 물고 모르는 일이면 어색한 웃음을 짓고 끝난다. 관심 없으니까. 나한테 이익이 되는지, 나와 상관이 있는지 그 정도의 필요만 있으면 그만이다. 나머지는 무시한다. 남의 이야기 길게 들어서 뭐해. 나 살기도 바쁜데. 이런 식이다. 의식해도 의식하지 않아도 점점 그렇게 된다.


이런 관점으로 부정(전도연)과 강재(류준열)는 어떤 사람들일까. 마흔을 넘고 서른이 다 되어가지만, "아무것도 되지 못한" 사람들. 나는 이런 일 해요.라고 말할 사람도 말할 거리도 딱히 없는 사람들. 가족은 있을 수밖에 없지만 그저 있거나 있었던 사람들. 엄청 돈이 많다거나 엄청 화기애애하다거나 엄청 엄청 그런 게 없는 사람들, 아주 가까운 사람이 죽은 사람들, 아주 가까운 사람은 또 다른 나와도 같았는데 그 사람이 사라져 자신도 사라진 사람들, 그 사람이 사라져 그 후유증이 나아질 수 없는 사람들, 허우적거릴수록 숨을 쉴 수 없는 사람들, 부정은 스스로 죽으려 했었다. 시어머니(신신애)와 남편(박병은) 사이에서, 태아까지 잃고, 동료들 눈앞에서 폭력과 멸시를 당하고 직업과 자존감을 모두 잃고, 상실의 폭격 사이에서 더 삶을 견뎌야 할 이유를 발견할 수 없었다. 각자의 사연으로 최후의 뜻을 함께한 사람들과 물가로 가 생을 마치려 했다. 타의로 죽는 일도 자의로 죽는 일도 쉽지 않았다. 삶이 그렇듯. 다시 죽으려고 했을 때, 강재가 말을 걸었다. 빵을 주며. 이후 부정은 귤을 줬고 그렇게 천천히 서로의 입을 열었다.


나를 모르는 사람에게 나를 이야기하는 게 나를 아는 사람에게 나를 이야기하는 것보다 쉽다는 건 스스로가 그토록 초라하고 쓸쓸하게 느껴질 수 없다는 반증이다. 근데 '나의 아저씨'의 동훈(이선균)과 지안(이지은)이 그러하듯, 출처가 달라도 내면에 커다란 구멍이 난 사람들은 보이지 않아도 서로를 알아보기도 한다. 강재와 부정도 그랬다. 서로에 대한 정보량이 거의 없었는 데도. 텅 빈 서로의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 안에라도 들어가 숨어서 웅크리고 싶어서. 주변 누구 하나 멀쩡하게 안 불쌍한 사람이 없었고 그들 틈 속에서 의지와 위로가 척박했던 적이 많아서 자신과 가장 멀지만 그래서 가장 찾게 되는 곳으로 서로가 닿게 되고 망설이다가 지정하고 말을 걸고 어깨와 얼굴을 당긴다.


이해고 공감이고 말과 글의 힘이 아무 쓸모 없어질 때, 시간과 삶의 일부가 부서져 걷고 있던 둘은, 서로를 의지하며 기대고 움직이지 않는다. 굳이 어디로 갈 필요도 없다. 그저 가만히 곁에 있어도 내가 당장 죽지 않아도 될 것만 같다. 나를 미약하게나마 긍정하게 된다. 이 사람과 있으면 스스로가 조금 괜찮게 느껴진다. 증오와 절규 속에서 당장이라도 산산조각날 것만 같은, 입을 틀어막는 고통 속에서 조금은 더 숨 쉴 수 있겠구나. 서로가 환상이 된다. 진통제가 된다. 산소호흡기가 된다. 바이탈 사인의 굴곡을 만드는 전류가 된다.


나를 결박한 현재의 모든 선을 다 끊어버린다고 해도 내게 새 삶이 펼쳐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의지라는 것이 좀 더 생겨서 앞으로의 시간이 궁금해져서 살고 싶어지는 것이다. 잊고 있던 에너지를 이 사람을 만나, 나와 비슷한 생의 일부가 구겨진 사람을 만나 얻게 된다. 주고받게 된다. 잠시 아주 잠시 기대어 자고 얼굴을 만지게 된다. 잠시라도 더 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