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 감독. 지옥
희망은 늦었다. 이미 절망은 모두의 유희가 되었다. 희망은 반복이자 시작을 품고 있는데 절망은 멈춘다. 모든 반복과 시작의 시동을 끈다. 이를 통해 제로가 아닌 마이너스의 상태로 만든다. 멈추어 썩게 만든다. 소리 없이. 두려움에 떨며 입을 틀어막는다. 나도 저렇게 갈가리 찢기다 타 죽을지 몰라. 심지어 모두가 보는 앞에서. 치욕과 고통에 대한 공포가 피에 젖은 시소를 탄다. 수순인 줄 알았던 죽음이 때와 방식을 예상할 수 없을 때 세상은 지옥이 된다. 선택권이 없는 모든 순간이 지옥이 된다.
무력감. 작은 보상을 바라며 꾸역꾸역 숨을 이어왔는데 그마저 무너진다면 그때까지 나를 보호하려 갈아왔던 모든 칼날은 자길 향한다. 아니 고생만 한 내 삶의 끝이 겨우 이거였어. 끝까지 부모를 저주하고 자식을 지키지 못하는 운명이었다니. 올라갈 사다리는 없다. 애초 사다리가 주어지지도 않았다. 가장 사랑하던 대상이 나보다 먼저 죽어야 할 때 인간은 고통의 새로운 차원에 돌입한다. 지옥이 죽음 전에 펼쳐지며 오감을 해체시킨다.
이 모든 사태의 예언자조차 면책권을 얻지 못한다. 설교는 공익을 내세우지만 스스로의 구원에 어떤 이익도 가져다주지 못한다. 정진수(유아인)는 외로웠을 것이다. 부모가 버렸고 신도 버렸으니까. 상식과 지식을 초월한 상황을 오랫동안 이야기했지만 사람들은 너무 오랫동안 외면했고 조작과 폭력을 동원하고 나서야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수십 년 동안 느낀 걸 너희도 느껴야 해. 나만 이렇게 덜덜 떨다가 죽을 순 없어. 정진수는 정성 들여 조장한 집단 공포 속에서 위안을 얻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갈가리 찢기고 타 죽은 자는 더 이상 말이 없다.
시연이 신의 놀이라면 아기는 유일한 생존자를 위장한 신의 아바타가 될 것이다. 만인의 추앙과 권력이 따라올 것이다. 존재 자체가 종교가 될 것이다. 인간은 그저 반응할 뿐이다. 피와 불 앞에서 놀라고 살아남은 자를 섬길 뿐이다. 마르지 않는 상상력과 공포가 아기 신의 권좌를 지킬 연료와 동력이 될 것이다. 기적과 상징의 허구 속에서 새로운 세력 형성과 이익 추구가 실현될 것이다. 이의를 제기한다면 신의 흉내를 내고 싶은 자들에 의해 온몸이 묶인 채 산채로 불타게 될 것이다. 구원도 구원자도 없다. 지옥은 애초 인간의 생산품이었다. 내가 죽기 전에 남이 죽는 걸 먼저 보고 싶어서 인간은 유튜브를 재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