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라이트 감독. 다키스트 아워
히틀러의 나치가 벨기에 네덜란드 프랑스를 부수고 있었다. 영국의 수뇌부는 침묵과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덩케르크에 몰린 연합군(영국군, 프랑스군, 벨기에군)은 전멸 직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윈스턴 처칠은 영국의 신임 총리가 된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를 통해 독일의 히틀러와 평화협정(굴복)을 맺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었다. 처칠은 그 전까지만 해도 독재에 맞서 끝까지 버티고 포기 없이 싸워야 한다고 부르짖고 있었다. 아무도 처칠의 입장을 꺾을 수 없었고 아무도 처칠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하지만 수천 명의 영국 청년들이 전장에서 죽어가고 있었고 수십만의 사상자로 이어질 수순이었다. 영국 역시 다른 나라처럼 전멸 직전의 상황, 처칠은 영국군 4천 명의 희생을 통해 시간을 끌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는 자신이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성적인 판단이라 한들 비이성적인 결과와 분위기를 몰고 올 것은 분명했다. 어둠을 자욱하게 채운 모든 침묵들이 어서 히틀러와 굴욕적 협상을 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었다. 처칠의 고독은 자초한 자리였다. 그의 말 하나에 전군이 방향을 바꿀 수 있었다. 그리고 전 유럽이 영향을 받을 수 있었다. 미국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한 상황, 처칠은 개인과 영국 사이의 어둠에서 결정하지 못한다. 누구에게도 쉬운 결정이 아니었고 어떤 결정이든 희생과 비난이 따라올 수밖에 없으며 전시 상황에서 총리의 결정이란 그런 것이었다.
끊임없이 내뿜는 담배 연기, 중독자 이상의 음주, 불면으로 인한 간헐적 언어 장애 증상까지, 꿀돼지라는 애칭을 지닌 처칠의 육체와 정신은 압박감에 눌려 질식하고 있었다. 실제 전장에서 날벼락같은 천재 플레이어의 등장은 없었다. 어떻게 하면 희생을 최소화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국민의 대다수 동의를 획득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국가의 중장기적 경제적 손실을 최소화할 것인가. 결정 하나가 고국에 노모와 어린 여동생을 두고 온 한 청년의 사지를 탱크 바퀴에 짓눌리게 할 수 있었고 또는 긴급 투입된 민간 선박에 태워 구출할 수도 있었다. 가장 격렬한 군사적인 상황에서 가장 비군사적인 전략이 해결책으로 대두되었다. 작전 이름은 아무렇게나 짓고 밖으로는 수단을 동원하고 안에서는 첨예한 대립 상황을 조율해야 했다. 한 사람의 고집이 아닌 한 국가의 한 시대의 멸망이 걸려 있었다. 처칠은 이동 중에 문을 열고 도망간다. 어둠보다 더 어두운 지하철로 잠입한다. 거기서 놀란 눈으로 총리를 구경하는 시민들에게 말을 걸고, 늦은 시각 조지 6세의 굳은 신뢰를 확인한다. 그렇게 자신이 결코 틀리지 않을 수도 있음을 재점검한다. 연설 후 양당 의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는다. 독재자와 협상은 없다고. 덩케르크의 병사들은 구출된다.
역사를 바꾸는 결정을 하는 자리는 홀로 획득한 것이 아니었다. 총리 처칠(게리 올드만)은 개인의 자리와 이름이 아니었다. 젊은 날 처칠을 선택했다는 이유만으로 한 평생 이인자가 되어야 했던 클레멘타인 처칠(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이 처칠의 가장 가까운 그늘 속에 있었다. 영국 역사상 가장 어두웠던 시기, 총리 처칠 역시 개인 역사상 가장 어두웠던 시기에 놓여 있었고, 그보다 더 어둡고 어두운 그의 그늘 속에 처칠의 아내 클레멘타인 처칠이 있었다. 처칠이 어떤 고뇌와 상황에 놓였던 인물인지 영국인과 전 세계가 알지만 그가 쓰러지지 않기 위해 어둠 속에서 알아서 먼저 부서져야 했던 이들의 슬픔과 고통은 알려져 있지 않다. 조 라이트 감독의 다키스트 아워는 클레멘타인 처칠에 대한 영화기도 하다. 처칠이 세상을 구하는 동안 클라멘타인은 처칠을 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