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아빠라는 명칭은 늘 나보다 먼저 태어난 사람들의 명찰 같았는데

by Glenn

내가 좋은 아빠가 될 거라고 말해준 분이 있었다. 아빠라는 명칭은 늘 나보다 먼저 태어난 사람들의 명찰 같았는데. 친구들이 아빠라고 불려도 그러려니 하고 딱히 와 닿지는 않았다. 집 밖에서 겪은 권위에 진저리 치며 살아서인지 명칭에 깃든 작은 위압도 꺼려진다.

어쩌다 아빠라고 불리게 되었지만 도로시와 나의 관계를 이미 사회에서 공개적/암묵적으로 규정된 형태로 못 박아두기는 싫다. 아내가 내게 그렇듯, 도로시와 나 역시 세습에 아랑곳하지 않는 자유롭고 따스하며 밀착된 보호막 안에서 서로의 곁에 간절히 있고 싶다.

도로시에게 나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아마 평생 고민하며 살아야 할 것 같다. 같이 누릴 수 있는 것들을 한없이 확장하고 서로의 세계관에 거대한 영향을 미치며. 어떤 외부와의 비교를 넘어 온전히 선택한 삶의 가장 근사한 자리를 내내 유지할 수 있도록.

도로시에게 받는 희열감과 교환할 수 있는 내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남은 시간을 모두 팔아서라도 내가 줄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하고 더 새로운 것들을 찾아 헤매고 잊히는 것과 머무르는 것들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함께, 언제나 함께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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