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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Apr 14. 2022

리턴 투 스페이스, 덜덜 떨며 우주로 나아가는 사람들

엘리자베스 차이 베사헬리, 지미 친 감독. 리턴 투 스페이스

9분 동안 음속의 25배로 날아가는 거죠.


달에 기지를 세우고

화성에 도시를 건설할 수 있어요.


마음속 어딘가 일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극복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이

계속해서 자리 잡고 있죠



우주를 늘 의심했다. 하늘의 천장을 뒤덮는 구름만 보면 전신을 떨면서도 (우주를) 완전한 수용의 영역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수없이 쏟아지는 (진짜라고 주장하는) 증거자료들 사이에서 확신을 얻지 못했다. 확신과 의심 사이에서 오래 머물렀던 건 이런 믿음의 기울기가 일상에 큰 불편함을 초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주가 대화의 소재가 되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수많은 영화들의 시공간적 배경이 우주일 때도 감독과 배우로 가려질 뿐 우주는 (역설적이게도) 존재감이 없었다. 모두를 먼지로 둔갑시키는 상식을 초월하는 스케일에도 불구하고 우주는 늘 앉을 자리가 없었다. 미국 항공 우주국(NASA)은 우주의 홍보담당자이자 보좌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나사는 인간의 조직이었고 우주는 인간 이전의 시공간이었으나 사람들은 나사를 기준으로 우주를 보고 있었다. 나사의 우주가 인류의 우주였고 지구의 우주였으며 영화의 우주였고 나의 우주이기도 했다. 나사는 일을 했고 우주는 우주의 삶을 살았다. 그리고 나사는 지구의 중력을 뚫고 우주로 날아가려는 시도를 멈추고 싶지 않았다. 조상들이 달에 다녀왔지만 후손들은 하늘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폭발과 사망 사고가 발생했고 나사는 더 이상 돈이 없었다. 나사가 문을 닫는다고 우주가 사라질 일은 없겠지만 나사가 일을 덜하면 현대인들이 우주를 떠올릴 일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엑스(SpaceX, Space Exploration Technologies Corp.)라는 민간 기업이 나선다. 다시 그리고 같이 앞으로 계속 우주로 가자고.


세 번의 기회가 있었고 모두 실패한다. 빌딩 높이의 수십 톤짜리 구조물이 균형을 유지하며 중력을 뿌리치고 날아가는 일은 지구 상 가장 뛰어난 사람들과 자본 기술과 투지가 뭉친다한들 쉽지 않았다. 아주 멀리서만 보면 너무 쉽게 불타고 너무 가볍게 무너졌다. 스페이스엑스는 다시 시도한다. 그리고 성공하고 계속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둔다. 숙련된 우주인을 태우고 우주로 날아가고 우주정거장과 도킹하고 우주정거장을 수리하고 다양한 실험을 통해 결과를 지구로 전송하고 수달 후 가족과 동료들에게 돌아온 후 다시 우주로 떠난다. 이렇게 글로만 쓰면 마치 온갖 우연과 행운이 수백 개가 동시에 일어나서 왕자와 공주가 행복한 노후를 맞는 이야기처럼 들리는데 실무가 그럴 리 없다. 스페이스엑스는 회사였고 대표와 직원, 프로젝트가 있었으며 우주로 못 가면 결국 축소하거나 경쟁사에게 우위를 빼앗겨 망하는 운명이었다. 수없이 세분화된 작업이 하나로 연결되어 오류 없이 마무리되어야 했다. 오류는 곧 사고였고 사고는 곧 돌이킬 수 없거나 회복 불가능의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으니까. 전 인류가 지켜보는 가운데 누군가의 가족이 죽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스페이스엑스 실무진들은 생사가 걸린 압박감으로 모니터와 하늘을 지켜본다. 끊긴 통신이 다시 연결되길 기다린다. 냉철한 지성과 이성으로 먹고사는 이들이 부적 같은 걸 적어 신발에 넣어놓고 간절히 염원한다. 아무도 웃지 못한다. 검붉은 긴장감만이 피부에 감돈다. 할리우드 영화의 절정처럼 성공한들 소리 지르며 환호하지 않는다. 폭발해서 공중분해되지 않아서 아무도 죽지 않아서 그저 다행이구나 같은 태도로 어정쩡한 박수를 친다. 우주 개발 역사의 정중앙에서 그들은 불안과 공포를 움켜쥐고 고요히 덜덜 떨며 나아가고 있었다. 일론 머스크는 그들의 대표 직함을 달고 직원 옆에 앉아 같이 숨죽이고 있었을 뿐이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여길 정도는 아니지만) 우주에 대한 의심은 여전하다. 다만 저토록 많은 이들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끊임없이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광경을 보면 조금은 같이 마음이 기울게 된다. 실체가 믿음을 만드는 게 아닌 다수의 믿음을 간접 경험하고 그 대상에 대해 보다 긍정적으로 여기게 된달까. 언젠가 인류는 달과 화성의 물가와 전세보증금을 비교하는 날과 마주할 수도 있겠지. 그날이 언제 올지 확언할 수 있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날을 기어이 오게 하기 위해 스페이스엑스 같은 직장에 다니며 우주 관련 업무를 하는 사람들은 계속 뭔가를 고민하고 만들고 실행하고 시행착오를 거듭할 거 같다. 이들이 우주를 미래가 아닌 현실의 영역으로 당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들이 우주로 가려고 하는 만큼 우주가 인류에게 실존의 영역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구에서 우주를 고민하며 돈을 벌다니.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리턴 투 스페이스는 (어떤 이유에서건) 우주를 포기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이들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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