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책

글그림 앤서니 브라운/옮긴이 허은미

by Glenn

돼지책은 공포영화의 원작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마지막 장까지 (새끼돼지가 아닌) 돼지새끼 같이 밥만 처먹던 남편과 두 아들이 독살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 피곳 부인은 남편과 아들까지 세 마리 돼지새끼의 배를 채워준 후 회사와 학교로 내보내고 설거지, 침대 정리. 바닥 청소 후 자신도 출근을 한다. 돌아온 돼지새끼들(일러스트는 사람으로 표현됨)은 다시 입을 벌리며 밥 달라고 꽥꽥거리고 피곳 부인은 먹이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다림질을 하고 요리를 한다. 그리고 사라진다. 피곳 부인이 사라지자 돼지새끼들은 난감해한다. 찾지 않는다. 알아서 끼니를 챙겨야 하는 상황에만 신경 쓴다. 아내와 엄마의 부재를 걱정하지 않는다. 집은 돼지우리가 되고 어느 날 피곳 부인은 돌아온다. 돼지새끼들은 그제야 지난날의 가해를 뉘우치며 용서를 빈다. 피곳 부인이 혼자 했던 가사를 각자 나눈다. 피곳 부인은 힘없이 웃는다. 웃는 게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피곳 부인은 차를 고치기로 한다. 사람은 고칠 수 없다는 것을 오래전에 알았다는 듯이. 나와 사고가 비슷한 인물이 앤서니 브라운의 돼지책을 원작으로 한 공포영화로 데뷔작을 찍는다면 피곳 부인이 남편으로 만든 스테이크를 썰어 입에 넣는 장면이 엔딩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좀 더 작은 조각으로 썰어 꽁꽁 묶인 두 아들 입에 넣어주며 이런 대사를 할지도 모른다. 아빠처럼 살지 말라고. 돼지들이 읽기엔 불편한 책이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해보면 현실의 돼지들에게 사람이 될 기회를 만들어주는 책이기도 하다. 여성을 학대하며 밥만 처먹는 돼지로 죽느냐. 각성하여 사람답게 사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