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아이

안녕달 그림책. 눈아이

by Glenn

한 명의 작가가 수년에 걸쳐 여러 권의 책을 낼 때 꾸준히 그 뒤를 따르는 독자들에게는 단단히 형성된 기대감이라는 게 있다. 이 기대감은 독자마다 제각각의 형태를 지녔고 채워지지 않을 경우 관계의 균열이 생긴다. 이제 이 작가는 나와 맞지 않는구나. 쉽게 흔들리지 않는 독자들도 있다. 이들은 좋아하는 작가의 새로운 작품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며 과거의 희열과 손에 쥔 새 작품 속에서 그와 비슷한 것, 사소해 보이는 장점이라도 거대한 강점으로 키워 해석하며 역시 이럴 줄 알았다며 놀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창작자의 의도와 수용자의 감동이 매번 매칭 되기란 쉽지 않다. 작가도 독자도 수많은 변수와 마주하며 각자의 삶을 살다가 다시 작품으로 만났을 때 서로의 움푹 파인 면과 볼록 나온 지점이 적절히 들어맞기란 치밀한 고민에도 불구하고 낮은 확률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파 속에 스친 어깨의 주인이 과거의 연인이었다는 만큼이나. 안녕달 작가는 이 낮은 확률을 뚫고 매번 장외 홈런을 때려왔다. 눈아이도 그렇다. 인간 아이와 마주 잡은 눈아이의 손이 뚝뚝 녹아내릴 때. 구르다 다쳤을까 봐 얼굴을 매만지고 후 불어주니 눈아이가 주르르륵 눈물 흘릴 때. 내가 더러워져도 우리는 친구냐는 질문이 들릴 때. 계절이 끝나고 친구가 사라졌을 때. 도로시와 함께 책장을 넘기며 읽어주던 나는 눈아이와 같이 녹고 같이 울고 같이 더러워지고 있었다. 인간관계의 절망과 비극을 경험의 흉터로 지니고 있는 (나와 비슷한) 이들에게, 배려와 헌신을 나누었다면 (한쪽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되더라도) 관계의 생명은 사라진 게 아니라는 믿음을 눈아이의 눈물은 알려준다. 숲의 풍경이 바뀌어도 우리는 다시 서로를 발견하게 될 거라고. 가장 추운 날 아무도 없는 설원에서 다시 손을 잡을 거라고.